보건의료 R&D 예산 2조4천억… AI 신약개발 '속도'

[2026년 신년기획/ 보건산업 AI 열풍] 정부 R&D지원
'고비용-저효율' 개선 구원투수로
융합인재 5년간 1000명 양성 목표
속도감 있는 AI 가이드라인 마련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인공지능(AI)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나의 신약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과 3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지만, 최종 성공률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이러한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깨기 위해 정부가 인공지능(AI)을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2025년 AI 신약 개발 분야에만 약 550억원을 집중 배정하고, 2026년에는 전체 보건의료 R&D 예산을 2조4000억원 규모로 확대하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정부 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축은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 추진하는 '연합학습 기반 신약 개발 가속화 프로젝트(K-MELLODDY)'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총 348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각 제약사가 보유한 기밀 데이터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도 AI 모델을 공동 학습시키는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기술을 활용한다.

그동안 국내 제약업계는 데이터 공유에 보수적이었다. 신약 후보물질 데이터는 기업의 핵심 자산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 방식은 보안 우려로 인해 현장에서 외면받아왔다"며 "K-MELLODDY는 데이터 소유권은 보호하면서도 학습 결과만 공유해 AI의 예측 정밀도를 극대화하는 혁신적인 모델이며, 이를 통해 K-바이오의 데이터 주권을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025년 2차 연도에 접어든 이 사업에는 국내 주요 제약사와 AI 스타트업, 대학병원 등 33개 기관이 참여하며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유효물질 발굴 단계에서만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I의 성능은 양질의 데이터에 달려 있다. 정부는 AI 신약 개발의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100만 명 규모의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을 본궤도에 올렸다. 유전체 정보, 건강검진 데이터, 임상 정보 등을 통합해 연구자들이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국가 바이오 데이터 스테이션(K-BDS)'을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단순히 데이터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AI가 바로 학습할 수 있는 'AI-Ready' 데이터로 가공하는 작업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독점하고 있는 데이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공공 데이터 개방이 필수적"이라며, "민감 정보인 의료 데이터를 폐쇄형 클라우드 환경에서 안전하게 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를 2026년까지 전국 거점 연구소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약 개발은 대표적인 '고위험' 산업이다. 정부는 민간 기업의 도전적인 연구를 독려하기 위해 금융 지원 정책도 재설계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성공불 융자 제도'의 도입 검토다. 이는 R&D 과제가 실패하더라도 정부 지원금의 상환 의무를 면제하거나 감면해 주는 제도로, 기업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AI를 활용한 파괴적 혁신에 도전하게 하려는 취지다.

또한 2025년부터는 임상 3상 진입을 지원하기 위한 1500억 원 규모의 전용 펀드를 조성하고, AI 기반 임상 설계 플랫폼을 개발하는 신규 과제에 예산을 우선 배정한다. 한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AI가 후보물질을 찾아내도 임상 단계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면 중견 기업들은 주저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실패 비용을 분담해주고 임상 설계 지능화를 지원하는 것은 산업 현장에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기술과 자본만큼 중요한 것이 인력이다. 정부는 AI와 바이오 지식을 겸비한 다학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의료 인공지능 특화 융합인재 양성 사업'을 통해 5년간 1000명 이상의 인재를 배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현재 현장에는 AI 개발자도 있고 바이오 전문가도 있지만, 두 분야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고 신약 개발 프로세스에 AI를 녹여낼 수 있는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원 정책이 단발성 예산 투입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들이 현장에서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가상 AI 신약 연구소 등 연구 정주 여건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AI 신약 개발 R&D 지원 정책은 이제 막 첫 단추를 꿰었다. 향후 과제는 속도감 있는 규제 혁신이다. AI로 도출된 결과물이 실제 인허가 과정에서 신속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AI 신약 가이드라인'을 세계 선도 수준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2027년까지 AI 기반 제조공정 혁신 지원을 완료하고, CDMO(위탁개발생산) 분야에도 AI를 접목해 전주기적인 AI 바이오 밸류체인을 완성하겠다는 포부다. 국가 바이오 이니셔티브를 중심으로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앤 'AI 바이오 범정부 협의체'의 활동 결과에 K-바이오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조언이다.

 


홍유식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카카오톡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