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열질환·천식·CODP 기후질환자 급증
"기후건강 취약계층 보호위한 제도 필요"
질병청 '기후감염병 감시체계' 전국 확대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상기후,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를 넘어, 이제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보건위기로 직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기후변화를 '21세기 최대의 건강 위협'으로 명확히 경고하고 있으며, 실제로 폭염, 대기오염, 감염병 확산 등으로 인한 질환 증가가 국내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보건당국과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기후변화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전 국민 건강 위기로 인식하고, 보건 중심의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는 환경 문제가 아니라 건강의 문제"라며, 기후위기를 보건의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의료기관의 탄소중립 실천과 함께 감염병 대응력 강화, 기후건강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런가운데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그것은 건강의 문제, 경제의 변수, 그리고 사회안전망을 흔드는 요인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약 1.6℃ 상승했으며, 이 추세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상승 폭(약 1.1℃)을 웃도는 수치다. 최근 5년간은 여름철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높고 지속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열사병, 탈수, 심혈관계 질환 등의 온열 질환이 급증했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여름철 응급실에 내원한 열 관련 환자는 2만명에 육박했으며, 이 중 60세 이상 고령층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고온 현상은 또한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며, 불면증, 불안장애, 우울증 환자의 증세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겨울이라고 다르지 않다. 갑작스런 한파는 저체온증, 심장 발작 등으로 이어지며 취약계층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노숙인, 독거노인, 난방이 어려운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고온·건조한 기후는 미세먼지 및 오존 농도의 증가로 이어지며, 천식과 만성 폐쇄성 폐질(COPD), 알레르기 환자에게 악영향을 준다. 지난해 봄, 수도권의 초미세먼지 경보는 9일 동안 지속됐으며, 이로인해 호흡기 내원 환자가 20% 이상 증가했다는 병원 보고도 나왔다.
기후변화는 전염병의 지형도 바꾸고 있다. 아열대성 기후가 확산되면서 말라리아·뎅기열 같은 모기 매개 감염병이 국내 유입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제주도에서는 일본뇌염 매개 모기가 매년 1개월 이상 일찍 출현하고 있으며, 국외에서 감염돼 국내로 입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에너지 문제도 심각하다. 예측 불가능한 폭염과 혹한은 전력 수요의 급증을 불러온다. 전력거래소는 2024년 여름철 하루 최대전력 수요가 100GW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노후한 송전망과 지역 간 불균형 문제까지 겹치며 정전 사고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후위기가 가져오는 에너지 취약성은 곧바로 시민의 생활 안정성과 연결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존 환경정책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보건영향평가를 포함한 통합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주요 제안으로는 △기후위기 대응 역량을 갖춘 지역보건 인프라 구축 △폭염 및 미세먼지 대응 매뉴얼의 정비 △기후 관련 감염병 조기경보시스템 강화 △기후취약계층대상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 등이 있다.
이와함께 기후정책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많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이행 속도가 너무 더디다는 평가다. 또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 화석연료 의존도 감축, 산업계의 구조 전환은 아직 기대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해 정부도 기후변화로 인한 국민 건강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후변화에 따른 건강관리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감염병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감염병 감시체계'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모기·진드기 등 매개체 감시 기간을 기존보다 1개월 이상 앞당겼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지역 보건소에 '기후보건 전담인력'을 배치하고, 폭염 취약지역에 대한 건강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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