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에 잠 안 와서 한 잔?… 술·커피 수면 리듬 망친다

다사랑중앙병원 이일준 원장 "3개월 이상 불면 지속될 땐 전문의 진료 받아야"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일준 원장

 

열대야로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차가운 술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초반 입면 시간을 잠시 줄여줄 뿐 전반적인 수면의 질 개선에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실제로 알코올 사용 장애를 앓는 환자들 사이에서 수면 장애는 매우 흔하게 관찰된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기관인 다사랑중앙병원이 지난 한 해 동안 입원 환자 1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5%(846명)가 입원하기 전부터 수면 장애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답했다.

알코올과 수면 장애는 서로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술은 인체의 정교한 수면 구조와 생체 리듬을 교란하며, 반복되는 불면과 낮 동안의 피로는 다시 술의 힘을 빌려 잠을 청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이 누적되면 알코올에 대한 내성이 생겨 음주량이 늘어나고, 결국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알코올은 뇌의 억제성 신경전달 물질을 자극해 신체 긴장감을 낮추고 졸음을 유도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체내에서 알코올이 분해되면 진정 작용이 사라지면서 수면 후반부에 뇌가 자주 깨어나는 '각성 현상'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새벽녘에 자주 깨거나 다시 숙면에 들기 어려워진다.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일준 원장은 "사람의 신체는 수면에 들어서기 전 피부 혈관을 통해 체열을 방출하며 중심 체온을 낮추는 생리 과정을 거친다"며 "하지만 기온과 습도가 모두 높은 열대야에는 체열 방출이 원활하지 않아 입면 자체가 어려워지고, 자는 동안 뒤척임이나 미세 각성이 빈번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무더위로 수면 여건이 악화된 상태에서 음주까지 더해지면 수면의 질은 한층 더 불안정해진다. 음주 후에는 수면 초반의 렘(REM) 수면이 억제되고 후반부에는 뇌가 자주 깨어나 잠의 연속성이 깨진다. 신체와 뇌의 회복을 돕는 깊은 비렘(Non-REM) 수면 역시 제대로 유지되지 못해 다음 날 극심한 피로감과 집중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외에도 알코올로 인한 이뇨작용과 발한 증상 역시 숙면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다. 덥고 습한 날씨에 땀을 많이 흘린 상태에서 배뇨까지 늘어나면 체내 수분이 모자라 입 마름과 갈증으로 잠에서 깨기 쉽다. 나아가 술은 목 주변과 상기도 근육을 수축시키지 못하고 이완시켜 코골이나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한층 악화시킬 수 있다.

이일준 원장은 "술을 마시면 초기에는 빨리 잠드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수면 후반부가 불안정해져 몸과 뇌의 피로 회복을 저해한다"며 "알코올 진정 효과에 자꾸 의존하다 보면 내성이 생겨 음주량이 점차 늘어나고,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술을 찾는 위험한 습관으로 고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열대야로 잠을 설친 다음 날 낮 동안의 졸음을 쫓기 위해 고함량 커피나 에너지 음료를 과도하게 마시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카페인은 졸음을 유발하는 아데노신 성분의 작용을 차단해 일시적으로 피로를 잊게 해주지만, 근본적인 수면 부족을 보충해주지는 못한다.

일반적인 성인의 카페인 반감기는 약 4~6시간 정도로, 늦은 오후나 저녁 시간에 섭취할 경우 입면을 지연시키고 전체 수면 시간을 줄어들게 만든다. 낮에는 카페인으로 졸음을 강제로 누르고 밤에는 술로 잠을 청하는 일상이 되풀이되면 인체의 정밀한 수면·각성 리듬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일준 원장은 "잠들기 어렵거나 수면 중 자주 깨는 불면 증상이 일주일에 3회 이상, 3개월 넘게 지속되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전문적인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심한 코골이나 수면 중 호흡 정지, 낮 동안의 과도한 졸음이 동반되는 경우에도 수면 질환 여부를 정밀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혜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