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병원 '2년 내 한계'… "의사도 간호사도 없다"
소아청소년병원협회, 71곳 실태조사 결과 진료 공백·운영난 확인
"상급종합병원 수준 지원 필요"…수가 현실화·의료진 보호 등 촉구
지역 소아청소년병원의 진료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현재와 같은 인력 부족과 채용난이 이어질 경우, 응답 병원 10곳 중 약 3곳은 2년 안에 현행 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이미 병원 10곳 중 6곳은 인력난으로 진료를 줄이거나 중단한 상태다. 전문의뿐 아니라 간호인력 확보마저 막히면서 야간·휴일 진료와 입원 진료를 포함한 지역 소아의료 전반이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회장 최용재)는 10일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회원병원 7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협회는 소아청소년병원이 경증부터 중등증까지 지역 소아환자를 담당하는 의료전달체계의 허리인 만큼, 상급종합병원에 준하는 지원과 지속 가능한 보상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용재 회장은 "소아청소년병원은 소아의료의 허리 역할을 하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물가와 인건비 상승에도 적절한 수가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진료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증부터 중등증 환자까지 담당하는 소아청소년병원에도 상급종합병원에 준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의 부족 74.6%…채용 시도 병원 72.1% 장기화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전국 120여개 회원병원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수도권 22곳, 충청권 12곳, 영남권 22곳, 호남권 15곳 등 총 71개 병원이 응답했다.
조사 결과, 진료에 필요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병원은 53곳으로 전체의 74.6%에 달했다. 인력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채용 지원자 부재였다. 응답 병원의 86.8%가 지원자가 없다고 답했으며, 야간·휴일·입원 근무 기피가 71.7%, 급여 부담이 58.5%로 뒤를 이었다.
최근 3년간 전문의 채용을 시도한 병원은 68곳으로 95.8%에 달했지만, 6개월 이내 채용에 성공한 곳은 27.9%에 그쳤다. 나머지 72.1%는 채용까지 6개월 이상 걸렸거나 끝내 인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남은 의료진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대표원장의 43.7%가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했고, 70시간을 넘는 경우도 9.9%였다. 장시간 근무 병원의 96.8%는 야간·휴일·입원 진료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근무시간이 늘었다고 답했다.
최근 5년간 전문의 급여가 30% 이상 오른 병원도 57.7%에 달했지만, 인력난은 해소되지 않았다. 인건비 부담을 감수해도 채용할 사람이 없고, 기존 의료진의 노동으로 진료체계를 간신히 유지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 3년간 전문의 부족으로 진료를 축소하거나 중단한 병원은 43곳, 60.6%였다. 야간 진료 축소·중단이 33.8%로 가장 많았고, 외래 진료시간 단축 29.6%, 휴일 진료 축소·중단 28.2%, 입원 병상 축소 23.9% 순이었다.
현재의 인력과 채용 여건이 이어질 경우, 응답 병원의 28.2%는 2년 이내 현행 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4년 이내 유지가 어렵다는 응답은 52.1%였다. 인력난이 단순한 채용 문제를 넘어 병원 운영과 지역 소아진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의 세대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사 대상 전문의 313명 가운데 40대와 50대가 66.1%를 차지했지만, 30대는 16.0%에 그쳤다.
한동균 부회장(광주 남구 미래아동병원장)은 "과거 전문의가 10명 넘게 근무하던 병원도 현재는 7명으로 줄었고, 가장 젊은 전문의가 40대인 상황"이라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 감소가 이어져 전문의 공급이 끊기면 소아의료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소아청소년과가 감기 등 흔한 질환을 진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은 환자 가운데 드물게 나타나는 중증·희귀질환을 조기에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진료 수요가 많고 환자의 성장·발달 과정까지 살펴야 하는 만큼, 전문인력 부족은 단순한 진료 건수 감소 이상의 문제라는 설명이다.
간호인력도 부족…"소아환자 한 명 진료에 더 큰 노동 부담"
전문의뿐 아니라 간호인력 확보도 난항을 겪고 있다.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답한 병원은 71.9%였으며, 채용이 어렵다는 응답은 87.3%에 달했다. 기존 간호인력의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신규 인력 유입마저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 회장은 소아청소년병원의 간호 업무가 높은 노동 강도와 감정적 부담을 동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아환자는 자신의 증상이나 통증을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고, 주사나 처치 과정에서 울거나 움직이는 경우도 많아 여러 의료진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수시로 살펴야 하는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소아환자 한 명을 돌보는 업무가 성인 환자 5~6명을 담당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의 노동 강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금을 높여도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남은 의료진의 신체적·정서적 피로가 누적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부회장도 "보호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가 아프면 가족들의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부담과 의료적 책임을 의사와 간호사가 감당하지만, 이들을 보호할 장치는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아 병동의 간호 필요도를 반영한 인력 기준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며 소아 진료 특성을 고려한 간호인력 배치와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수가·인력·의료진 보호…7개 분야 대책 촉구
협회는 의료인력 부족이 개별 병원의 경영난을 넘어 지역 소아필수의료 전달체계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회원병원들이 제시한 정책 요구사항 49건을 바탕으로 수가 개선과 재정 지원, 인력 공급 확대, 의료진 보호 등 7개 분야의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가장 많은 요구가 나온 분야는 수가 개선으로 35건이었다. 기본 진료수가 현실화와 소아 가산 확대, 소아 정책수가의 재진 적용, 처치·수액 등 소아 진료 특성을 반영한 보상체계 마련 등이 포함됐다.
전문의와 간호사 인건비 및 인력관리 지원 등 재정 지원 요구는 8건, 전공의 지원 확대와 전문의 배출 기반 회복 등 인력 공급 확대 요구는 7건이었다. 의료분쟁에 따른 법적 부담을 완화하고 악성 민원으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요구도 5건 나왔다.
야간·휴일·입원 진료를 유지하는 병원에 대한 별도 보상 요구는 4건이
었다. 소아환자의 간호 필요도를 반영한 인력 배치 기준과 야간간호료·처우 개선 등 간호인력 지원, 지방 의료기관 우대와 지역별 인력 확보 지원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이홍준 부회장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로 사법 리스크와 지속 가능한 수가 보상체계를 꼽았다. 의료진이 진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부담을 크게 느끼고, 충분한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정부 지원이 개별 현안에 대응하는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소아의료 전반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제도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이 심화한 데 이어, 최근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까지 이어지면서 의료진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가와 인력 문제뿐 아니라 의료진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회장은 "지금은 21세기에 살면서도 소아청소년병원들이 마치 19세기처럼 환자를 진료하는 상황"이라며 "소아청소년병원이 허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상급종합병원에 지원되는 수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래 세대의 의사들이 다시 소아청소년과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아이들의 미래도 밝아질 수 있다"며 정부에 지역 소아필수의료를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과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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