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항암제 붕괴, 혈액암 치료 '근간' 흔들린다

혈액학회 "기초 항암제 품절 반복은 구조적 위기"… 수련 붕괴·인력난까지 겹친 '삼중 위기' 경고

국내 혈액암 치료 현장에서 '기초 항암제' 공급 불안이 반복되며 표준치료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여기에 전공의 수련 환경 악화와 인력 감소까지 겹치면서, 혈액암 치료 체계 전반이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지적이다.

대한혈액학회(이사장 김석진)는 지난 26일 '2026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ICKSH 2026)' 기자간담회를 통해 필수 항암제 품절 문제와 수련·인력 시스템 붕괴를 동시에 짚으며 "지금과 같은 구조가 지속될 경우 환자 치료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현장에서 가장 심각하게 제기된 문제는 도노루비신, 빈블라스틴, 블레오마이신 등 고전적 세포독성 항암제의 공급 불안이다. 이들 약제는 최신 표적치료제·면역항암제가 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치료의 '백본(backbone)'으로 사용되는 필수 약물이다.

김석진 이사장은 "호지킨림프종의 경우 50년간 표준치료로 사용된 ABVD 요법이 여전히 기본"이라며 "이 치료에 포함된 핵심 약제 공급이 흔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완치율이 90% 이상인 질환에서도 약 하나가 빠지면 치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이 상황은 의료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싸서 안 만든다"… 약가 구조가 만든 위기

학회는 공급 불안의 핵심 원인으로 '낮은 약가 구조'를 지목했다.

김 이사장은 "오래된 항암제는 약가가 너무 낮아 제약사 입장에서는 생산할수록 손해"라며 "필수 약임에도 불구하고 생산 중단이 반복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항암제는 '퇴장방지 의약품'으로 지정돼 있음에도 공급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호영 학술이사는 "원료 수급 문제와 낮은 수가가 맞물리면서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있다"며 "결국 더 비싼 신약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어 국가 의료비 부담도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문제는 10년 이상 반복된 구조적 문제"라며 "약가 현실화와 국가 차원의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기초 항암제에 대한 '공공 관리' 필요성도 강하게 제기했다.

박용 총무이사는 "신약 도입도 중요하지만 치료의 근간이 되는 기초 약제는 공공 영역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쌀처럼 일정 물량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혜리 홍보이사는 "기본 약제조차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진료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현재와 같은 공급 구조로는 안정적인 환자 치료를 담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전공의 수련 붕괴… "환자도, 미래도 위태"

문제는 약제 수급에 그치지 않는다. 전공의 수련 환경 악화와 인력 부족이 동시에 발생하며 치료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혜리 이사는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 이후 진료 연속성이 깨지고, 실제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수련 환경조차 제대로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박용 총무이사 역시 "전공의는 피교육자이자 노동자인데, 몰입해 임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시기가 사라지고 있다"며 "이 영향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분야가 혈액학"이라고 밝혔다.

김석진 이사장은 "고난도 치료는 단순히 교과서로 배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며 "현장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수련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젊은 의사 떠난다"… 필수의료 붕괴 신호

현장에서는 의료 인력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김혜리 이사는 "의정 갈등 이후 의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며 "필수 진료과에서 인력이 빠져나가는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혈액학처럼 고난도·고위험 분야는 기피 현상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학회는 인재 유입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 의사들을 위한 교통비·숙박 지원, 학회 참가비 면제, 해외 연수 지원 프로그램 등이 새롭게 추진되고 있으며, 의대생 대상 교육 프로그램도 확대되고 있다.

임호영 학술이사는 "학생들이 혈액학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미래를 위한 투자 역시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회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약 부족 문제'가 아닌 의료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위기로 규정했다. 약가 구조, 공급 체계, 수련 환경, 인력 정책이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라는 것이다.

김석진 이사장은 "기존 제약사가 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만 만들어줘도 상당 부분 해결 가능하다"며 "복잡한 해결책이 아니라 정책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기초 항암제 공급 안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국가 차원의 종합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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