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국민의료비 20.5%를 약값에 지출하며 OECD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24년 약품비는 27조원으로 급증했고 고령화와 다약제 처방 증가로 건강보험 재정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약가제도 개편을 통한 건강보험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이수진·서영석·장종태·김윤 의원과 시민단체가 주최했다. 국민건강보험노조가 주관한 행사에서 배재대 나영균 교수와 원진녹색병원 정형준 원장이 발제자로 나섰다.
발제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약제비는 영국·호주 등 GDP 수준이 비슷한 국가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으로, 이는 소득이 아니라 약가 구조 문제를 반영한다. 국민의료비 중 약제비 비중은 20.5%로 OECD 평균(14.4%)은 물론 일본(16.3%), 독일(14.3%), 프랑스(13.1%), 영국(11.8%)보다도 높다.
특히 한국은 제네릭 약가가 오리지널의 53.55%에 고정되는 구조 탓에 가격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점이 핵심 문제로 지적됐다. 미국·유럽에서는 제네릭 진입 후 6개월~1년 내 10~20%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지지만, 한국은 정부 규정이 사실상 '하한선'처럼 작용해 비용 절감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제네릭 사용량은 많지만 지출 비중이 거의 줄지 않는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다.
처방 구조 역시 왜곡돼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가 상품명(브랜드명)으로 처방하는 관행 때문에 약사가 더 저렴한 동일성분 제네릭으로 바꾸기 어려워, 대체조제율은 1% 안팎에 머문다. 미국의 90%대, 유럽 대부분 국가의 80% 이상과 극명히 대비되는 수치다. 이로 인해 제네릭 가격 경쟁이 막히고, 제약사의 마케팅·리베이트 의존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신약 접근성은 OECD 최하위권 수준이다. 처방약 시장 규모는 상위권이지만, 총 약품비 중 신약 지출 비중은 13.5%로 OECD 평균의 절반 이하에 불과해, 고약가 구조가 혁신 투자와 환자 접근성 개선으로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약품비는 2011년 13.1조원에서 2024년 27조원으로 2배 넘게 증가했고, 2023년 약품비 증가율은 8.5%로 총진료비 증가율(4.7%)을 크게 상회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노인의 약품비 비중이 51.7%를 돌파하고, 10개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다약제 만성질환자가 급증하면서, 고령사회 진입과 맞물린 재정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고약가·저효율 구조를 방치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 위기가 상수로 굳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성분명 처방 확대와 건강보험공단 중심의 약가 계약 체계 전환을 핵심 해법으로 제시했다. 우선 품절약을 대상으로 국제일반명(INN) 강제 및 성분명 처방 의무화 시범사업을 도입해,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특정 브랜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제안이다.
또 건강보험공단이 신약·제네릭 등재와 약가 계약을 주도하고, 재정 목표비율에 맞춰 약가를 조정하는 구조를 통해 제약사와의 이해상충을 줄이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비대면 진료(원격의료)에 대해서는 성분명 처방만 인정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원격지 약국에서 상품명 처방이 그대로 조제되기 어렵고, 대체조제 가능 약국을 둘러싼 유인·알선 문제가 불거진 만큼, 재진·경증 위주인 원격진료에서는 성분명 처방으로 표준화하자는 취지다.
약가뿐 아니라 공급·처방·유통 전 과정에서 국민의 정보 접근성과 이용 편의, 부담 경감을 중심에 둔 한국형 약가정책 로드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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