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제 말기인 중학교 1학년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서울 피맛골에는 명월관 같은 유명한 음식점도 있었지만, 나는 서민들이 즐겨 먹었던 설렁탕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집에 손님이 오면 근처 설렁탕집에 냄비를 직접 가지고 가 설렁탕을 사 오곤 했다.
서울 토박이 음식을 잘 표현한 설렁탕은 역사가 깊다. 조선 임금들은 농사철이 되면 못논을 받고 모를 냈다고 한다. 그때 많은 신하들과 백성들이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이 설렁탕이었다. 후에 경성사람들이 겨울철 보양식이나 해장국으로 즐겨 먹으면서 설렁탕은 경성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설렁탕은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인 음식으로 여겨졌다. 서울 배오개 시장 근처에는 설렁탕집이 많았다. 이제는 청진동 선지해장국집만 남아 있지만, 선지해장국은 설렁탕과는 조금 다르다. 도축장이 많았던 마장동 근처에도 설렁탕집은 많았고 경기 안성 지역 설렁탕도 유명했다.
설렁탕은 조리할 때 간을 하지 않는다. 각자 식성에 따라 소금, 후추, 다진 파를 넣고 간을 맞춘다. 여기에 깍두기 국물을 풀어서 얼큰하게 먹는 것이 서울 방식이다. 맛있게 익은 김치와 깍두기를 썰어 넣고 먹었던 기억이 새삼 그립다.
소의 뼈를 오랜 시간 끓인 설렁탕 외에도 서울 서민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으로 여러 부위의 소고기를 푹 고아내 국물이 맑은 곰탕이 있다. 곰탕으로 이름났던 음식점인 하동관도 기억난다. 전라도에서 인기가 많았던 나주곰탕은 특히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모를 심을 때가 되면 박정희 대통령이 수원에 나가 모를 심고 먹었다던 갈비탕도 유명했다.
이제는 많은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그들이 값비싼 고급 음식만 찾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은 규동을 파는 대형 음식체인 요시노야(吉野家)다. 일본에도 국밥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설렁탕은 맛보기 힘들다.
앞으로도 일본과 중국 관광객은 계속 우리나라를 찾을 것이다. 그들은 유명 음식점은 물론 시장 안에 있는 서민 맛집들도 속속들이 찾아다닌다. 옛날 맛집을 육성한다는 의미에서 지금이라도 서울 설렁탕을 되살렸으면 좋겠다.
최근 해외에서도 한식은 신선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발효음식인 김치가 건강식으로 알려지면서, K-치킨이나 K-라면과 함께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음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 골목마다 뜨끈한 설렁탕에 김치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설렁탕집이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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