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으로 인한 질병 치료비 책임을 담배회사에 묻기 위해 시작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끈질긴 법정 다툼이 항소심에서도 가로막히며 사법적 책임 규명의 한계를 드러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정기석)은 지난 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담배회사(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청구가 기각됐다고 밝혔다.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 역시 담배회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공단은 특히 재판부가 1960~70년대 흡연자들이 이미 유해성을 인지하고 흡연을 선택했다고 판단한 점에 대해 "미국 공중보건국조차 1988년에야 니코틴 중독성을 인정한 의학적·사회적 현실을 무시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제조사가 만든 담배에 대해 거액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미국·캐나다 등 해외 판결과 대조되는 우리 사법부의 소극적 태도가 국민 건강권 보호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번 판결은 비록 공단의 패소로 끝났지만, 법조계와 보건의료계에서는 '절반의 진일보'라는 평가와 '구조적 한계'라는 분석이 동시에 나온다.
1심이 흡연과 질병 간의 인과관계를 원칙적으로 부정한 것과 달리,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장기간 고도 흡연자가 폐암·후두암에 걸린 경우 흡연과의 인과관계를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향후 개별 흡연 피해자들이 제기할 소송에서 담배회사의 책임을 입증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강화됐음을 시사한다.
전 세계적으로 담배 규제는 '개인의 선택'에서 '제조사의 책임'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1998년 대규모 합의(MSA)를 통해 사회적 비용을 보전받았고, 영우과 몰디브는 특정 세대의 흡연을 원천 차단하는 강력한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이번 소송은 한국의 사법 체계가 이러한 글로벌 추세와 국민적 공감대(150만 명 지지서명)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공단은 판결문을 정밀 분석해 대법원 상고를 검토할 방침이다. 단순한 소송 승패를 넘어, 건강보험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흡연 피해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해결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다. 전문가들은 사법적 판단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담배회사에 '건강증진부담금' 이상의 직접적 책임을 지우는 입법적 보완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공단 관계자는 "대한민국은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당사국으로서 국민을 보호할 국제적 책무가 있다"며, "보험자로서 담배로 인한 사회적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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