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응급실 과밀화 해법은 '상담'… 24시간 '아이안심톡'이 만든 변화
'2025 소아전문상담센터 심포지엄'… 경증 환아 10명 중 9명, 응급실 대신 '집·동네의원' 선택해
'아이안심톡' 만족도 4.8점… 부모 불안 낮추고 소아응급의료 붕괴 막는 '디지털 안전망' 급부상
밤늦게 갑자기 열이 오르거나 기침이 심해진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향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부모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지금 당장 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다. 소아응급실 과밀화가 일상이 된 현실 속에서 이러한 부모의 불안을 전문 상담으로 해소하는 새로운 대안이 현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24시간 소아 온라인 전문 상담 서비스 '아이안심톡'을 운영 중인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이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경증 환아의 불필요한 응급실 방문을 줄이며 소아 응급의료 체계의 새로운 안전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성과와 향후 발전 전략을 공유하는 '2025 소아전문상담센터 심포지엄'이 지난 12일 개최됐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시범사업 운영 결과를 비롯해 해외 선진 상담 모델, 인공지능(AI) 기술 접목 가능성, 그리고 제도화를 위한 정책 과제가 폭넓게 논의됐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차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을 주관기관으로 인하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등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과 함께 국내외 소아응급의료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아이안심톡' 4개월 성과… "응급실 가야 할지, 전문가가 판단"
가장 주목을 받은 부분은 실제 '아이안심톡' 시범사업 운영 성과였다.
사업을 총괄하는 백소현 소아전문상담센터장(분당차병원)은 인터뷰를 통해 "지난 4개월간 이용자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8점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며 "상담 후 응급실이 아닌 자택에서 경과를 관찰하겠다는 응답이 66%, 인근 의원을 이용하겠다는 응답이 약 20%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즉, 상담 이용자 10명 중 9명 이상이 응급실 방문을 미루거나 대체 의료기관을 선택한 셈이다. 반면, 상담 직후 응급실 방문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경우는 3%대에 불과했다.
현재 '아이안심톡'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경력 간호사로 구성된 전담팀이 24시간 대기하며, 평균 15분 이내에 보호자에게 상담을 제공한다. 의료진은 소아 응급 분류 체계(K-TAS) 등 임상 기준을 바탕으로 병원 방문 필요성을 판단하고 보호자에게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안내한다.
백 센터장은 "야간이나 주말에 부모들이 맘카페나 SNS의 비전문적인 정보에 의존하다가 불안이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안심톡'은 '지금은 괜찮다' 혹은 '지금 바로 가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백 센터장에 따르면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인프라 격차가 3~4배에 달하고 전국에 소아전문응급센터는 12곳에 불과했다. 반면 응급실 내원 소아 환자의 35% 이상은 KTAS(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 4~5등급에 해당하는 경증환자였다. 문제는 늦은 밤 아이가 열이 나거나 아플 때 보호자들이 의학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분당차병원 응급의학과 박수현 교수는 "보호자들이 급한 마음에 '맘카페' 등 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리지만 비전문가의 경험에 의존한 답변은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결국 불안감에 휩싸여 응급실을 찾게 되는데, 이를 전문가가 사전에 걸러주는 '트리아지(Triage)'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안심톡은 이러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12세 미만 경증 환아 보호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서비스다. 보건복지부의 '응급독독' 앱을 통해 1차적으로 중증도를 분류하고, 경증으로 판별한 경우 '아이안심톡' 웹페이지로 연계해 전문 의료진과 1:1 상담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상담은 소아 응급 진료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와 간호사가 팀을 이뤄 진행하며, 평균 15분 이내에 답변을 제공한다.
만족도 4.8점, 응급실 방문율 3.1%
지난 8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한 시범사업의 초기 성적표는 고무적이다. 센터 측이 진행한 만족도 조사 결과, 이용자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8점을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보호자들의 행동 변화였다. 백 센터장은 "상담 후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집에서 경과를 관찰하겠다는 응답이 66%였으며, 인근 1차 의료기관을 방문하겠다는 응답이 20%를 넘었다"며 "응급실에 가겠다고 답한 비율은 3.1%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상담센터가 보호자의 불안을 해소하고 자가 처치법을 안내해 굳이 응급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경증환자를 효과적으로 분산시켰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AI는 보조 수단… 최종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 몫"
심포지엄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상담 고도화 방안도 논의됐다. 그러나 의료진들은 '안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꼽았다.
박수현 교수는 "소아는 체중, 연령, 증상 변화에 따라 약물 용량과 대응이 달라져 AI가 단독으로 판단하기엔 위험 요소가 많다"며 "현재는 챗봇을 활용해 1차 정보를 수집하더라도 반드시 의료진이 검수하고 최종 답변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영진은 시범사업의 한계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가장 큰 과제로는 '홍보 부족'이 꼽혔다.
분당차병원 권재현 교수는 "아직 많은 보호자들이 이런 서비스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며 "정부 차원의 공식 홍보와 함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전용 앱 개발 등 기술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센터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 "내년까지 시범사업을 통해 상담 매뉴얼과 데이터베이스를 고도화하고, 2027년 본사업으로 안착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소아 상담은 진료가 아니지만, 의료 공백을 메우는 필수의료의 한 축"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먼저 아이안심톡'이라고 떠올릴 수 있도록, 119와 같은 공공 인프라로 제도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소아응급실 붕괴 위기가 현실이 된 지금, '아이안심톡'은 병상 확충이나 인력 증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경증 환아는 집과 동네의원으로, 중증 환아는 신속하게 응급실로 연결하는 이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 제도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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