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약물 도입, 법적·의료적 안전장치부터 마련해야"

산부인과학회-인공임신중절위원회, 법제처 유권해석에 입장 발표
"법 개정없이 품목허가 추진, 제도적 부담 의료현장·여성에 전가"

대한산부인과학회와 건강한여성재단 인공임신중절위원회(이하 임중위)가 법제처의 임신중지약물 품목허가 관련 유권해석에 대해 "법적 의미는 존중하지만, 안전한 임상 사용을 위한 제도적 조건까지 마련된 것은 아니다"라며 법 개정과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법제처는 지난 19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질의에 대해 임신중지약물의 수입품목허가가 현행 모자보건법에 위반되지 않으며, 약사법상 안전성·유효성 요건을 충족할 경우 식약처의 허가는 재량행위가 아닌 기속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회답했다.

이에 대해 임중위는 "이번 해석이 임신중지약물의 국내 도입 가능성을 법적으로 확인한 의미는 있지만, 약물을 실제 임상에서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조건까지 확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임중위는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선제)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가 함께 구성한 산부인과계 협의체다.

임중위가 그동안 일관되게 제시해 온 원칙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임신중지 의약품을 도입하거나, 최소한 형법·모자보건법의 조속한 개정과 의약품 도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의사의 양심적 거부권을 보장하고, 해당 의약품을 의약분업 예외 의약품으로 지정해 산부인과 전문의가 처방하도록 하며, 안전관리체계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임중위는 이러한 입장이 임신중지약물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입의 순서와 조건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특히 임중위는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법적·의료적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은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에 포함된 약물로, 임신중지 과정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안전한 사용을 위해서는 투약 전 임신 주수 확인과 자궁외임신 배제, 투약 후 임신 조직의 완전 배출 여부 확인, 필요시 사후진료와 응급진료가 가능한 의료체계가 필요하다는 게 임중위의 설명이다.

적절한 사전·사후 평가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량 출혈이나 감염, 불완전 유산 등에 따른 응급수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중위는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가 임신중절 방법을 '의사의 수술'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어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의 정의와 허용 주수, 처방기관 요건, 추적관찰 및 응급대응 등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형법상 관련 규정의 공백 역시 의료진이 진료 과정에서 법적 위험을 부담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았다.

임중위는 "법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여성의 건강과 안전 때문"이라며 "안전한 진료 접근성과 부작용 관리체계를 먼저 확보해야 여성의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의학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또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이 지났지만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품목허가 절차만 먼저 진행되는 데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임중위는 "입법적 정비 없이 품목허가 절차만 선행되면 제도 미비의 부담이 의료현장과 여성에게 전가될 수 있다"며 "국회와 정부가 대체입법 책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행정해석에 의존해 도입을 진행하는 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임신중지는 의약품 허가만으로 완결되는 사안이 아니라 진단과 상담, 투약, 추적관찰, 응급이송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의료체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법 개정에 앞서 실제 품목허가를 추진할 경우에는 안전장치를 허가조건과 위험관리계획(RMP)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선 처방자를 산부인과 전문의 가운데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의사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중위는 이 밖에도 임신중지약물의 안전한 도입을 위해 투약 전 임신 주수와 자궁외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진료체계, 투약 후 완전 배출 여부를 확인하는 추적관찰, 출혈이나 감염 등 이상반응 발생 시 신속한 응급진료가 가능한 연계체계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물의 처방과 복용만 허용하고 사후관리 체계를 의료기관과 환자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임중위는 "임신중지약물은 단순히 의약품 하나를 허가하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며 "여성이 안전하게 진단받고 상담받은 뒤 약물을 사용하고, 이후에도 필요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전 과정의 안전망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법 개정 이전에 품목허가를 진행한다면 의료현장의 혼란과 여성의 건강상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안전관리 방안을 허가조건에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