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하지정맥류라고 하면 다리 피부 위로 굵은 정맥 혈관이 뱀이나 지렁이처럼 구불구불하게 튀어나온 모습을 떠올린다. 이 때문에 외관상 다리 피부가 매끄럽고 깨끗하다면 자신은 하지정맥류와 거리가 먼 건강한 다리를 가졌다고 자신하곤 한다. 다리가 조금 무겁거나 저려도 그저 하루 일과가 고됐거나 운동 부족으로 생긴 일시적인 피로 현상으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의학 전문가들은 외관상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해서 하지정맥류가 아니라고 단정 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한다. 실제로 환자 중 상당수는 혈관 돌출이 전혀 없음에도 내부 정맥 시스템이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로 진단받는다. 이를 의학계에서는 '잠복성 하지정맥류'라고 부른다.
눈에 보이는 미용상의 문제 이전에, 혈관 내부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진행성 혈관 질환이다. 겉은 멀쩡해 보일지라도 다리 깊숙한 곳에서는 이미 심장으로 가야 할 혈액이 갈 곳을 잃고 역류하며 속을 악화시키고 있을 수 있다. 조용히 다리 건강을 해치는 그 실체와 그 경고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정맥에는 자체적인 펌프가 없다. 대신 우리가 걸을 때마다 종아리 근육이 수축·이완하며 혈액을 위로 밀어 올린다. 이때 혈액이 중력 때문에 밑으로 다시 쏟아지지 않도록 댐 역할을 해주는 조직이 바로 정맥 내부의 판막이다. 유전, 노화, 혹은 장시간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습관 등으로 인해 이 판막이 망가지면 위로 올라가던 혈액이 거꾸로 쏟아져 아래쪽 혈관에 고이게 된다. 다리는 이미 일상 속에서 주인을 향해 주관적인 불편감이라는 SOS 신호를 보낸다. 오후만 되면 모래주머니를 찬 듯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지거나, 신발이 꽉 낄 정도로 붓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88흉부외과의원 임재웅 원장은 "하지정맥류의 치명적인 특성은 자연 치유가 되지 않는 진행성 질환이라는 점이다. 한 번 고장 난 판막은 스스로 재생되지 않으며, 치료하지 않는 한 세월이 흐를수록 손상 부위는 계속 아래로, 주변으로 번져나간다. 더 심해지면 세포에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작은 상처에도 피부가 쉽게 헐고 진물이 흐르는 정맥성 궤양으로 발전하며, 최악의 경우 조직이 스스로 썩어 들어가는 피부 괴사라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리가 보내는 조용한 신호들을 감지했다면 혈관 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는 초음파를 통해 내부 정맥 혈관의 모양과 판막의 고장 여부를 실시간 영상으로 확인하는 검사로,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잠복성 하지정맥류를 잡아내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역류 시간이 0.5초 이상 지속되면 치료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임재웅 원장은 "과거에는 피부를 절개하고 혈관을 뽑아내는 수술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칼을 대지 않는 최소침습적 치료법이 대세를 이룬다. 레이저나 고주파의 열에너지로 혈관을 폐쇄하는 치료부터, 의료용 생체접착제를 주입해 역류 혈관을 붙여버리는 베나실, 기계적 자극과 약물을 사용하는 클라리베인 등이 대표적이다. 통증이 거의 없고 회복이 빨라 시술 당일 곧바로 일상 복귀가 가능하다. 특히 내부 뿌리 혈관에는 이상이 없고 피부 표면의 실핏줄만 터진 초기 단계라면, 주사를 통해 혈관을 굳혀 흡수시키는 혈관경화요법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전했다.
이어 "혈관이 울퉁불퉁 튀어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매일 저녁 느끼는 무거움과 붓기, 밤마다 다리를 뒤틀리게 만드는 쥐 현상은 몸이 보내는 간절한 신호다"며 "하지정맥류라는 조용하고 무서운 혈관의 경고를 알아차리고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직 다리 주인의 빠른 관심과 결단뿐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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