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해법 맞나"… 전공의들, 호남권 이송체계 시범사업 우려

YPPI 정책브리프 발간… 전공의 82% "의료사고 법적 부담 가장 심각", "수용 이후 책임은 현장 몫" 지적

"응급환자를 받으라고 하지만, 수술실과 중환자실이 이미 포화 상태라면 결국 현장 의료진만 위험을 떠안게 됩니다."

젊은의사정책연구원(원장 박창용, 약칭 YPPI)이 공개한 호남권 응급환자 이송체계 시범사업 정책브리프에는 응급실 현장의 불안과 피로감이 고스란히 담겼다.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해소를 목표로 광역상황실 중심 이송체계를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의료 현장에서는 응급실 과밀화와 배후진료 공백, 의료사고 법적 책임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공의 10명 중 8명 이상이 의료사고 발생 시 법적 부담을 가장 큰 문제로 꼽으면서, 현장 안전망과 책임 구조 정비 없이 추진되는 이송체계 개편이 또 다른 의료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정책브리프는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이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인 '호남권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주제로 구성됐다. 정부는 광역상황실 기반 이송체계를 통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의료진 부담 증가와 환자 안전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브리프에는 호남권 응급의료기관에서 근무 중인 응급의학과·내과계·외과계 전공의들의 현장 경험을 담은 르포 형식의 기록과 함께, 지난 4월 실시한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가 포함됐다. 현장 전공의들은 응급환자 수용 이후 발생하는 책임 구조 문제를 가장 큰 부담으로 꼽았다.

광주의 한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이미 walk-in 환자로 진료 역량이 포화된 상황에서 사전 문의 없이 환자가 이송되면 결국 현장 의료진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전공의는 "경증 환자임에도 환자 요구만으로 상급병원 응급실로 이송되는 사례가 반복된다"며 응급실 과밀화를 우려했다.

배후진료 공백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제기됐다. 전북 지역 한 내과계 전공의는 "중환자실이 이미 가득 찬 상황에서 추가 환자를 수용하면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과계 전공의 역시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아도 실제 수술 가능한 의료진 연결이 되지 않으면 처치 지연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현장 불만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71%가 시범사업 운영 만족도에 대해 10점 만점 기준 3점 이하를 부여했으며, 32%는 최하점인 1점을 선택했다. 특히 내과계와 외과계 전공의에서는 부정 평가 비율이 각각 82%, 83%에 달했다.

현장 의료진이 꼽은 가장 큰 문제는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82%가 이를 최대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이어 ▲광역상황실의 실제 수용 역량 파악 미흡(59%) ▲119 사전 고지 의무 폐지(57%) 등이 뒤를 이었다.

구급대원의 사전 중증도 분류 체계(pre-KTAS)에 대한 신뢰도 역시 낮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66%가 현장 분류와 실제 환자 상태의 일치도가 낮다고 평가했으며, 응급의학과 전공의에서는 부정 평가 비율이 80%에 달했다.

광역상황실 운영 방식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전체 응답자의 78%는 상황실의 수용 지시가 실제 병원의 중환자실·수술실·전문의 인력 상황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YPPI는 이번 브리프를 통해 세 가지 선결 과제를 제안했다. 우선 중증 응급환자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면책과 국가 책임 기반 보상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간 치료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배후진료 인력 확충과 연계 프로토콜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병상과 수술실, 중환자실, 당직 전문의 현황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광역상황실 역시 단순 수용 지시 기관이 아닌 현장 의료진과 사전 협의하는 조정 중심 거버넌스로 기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산하 YPPI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단순히 구급차 목적지 지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며 "시범사업 종료 이후에는 반드시 현장 의료진의 경험과 데이터를 중심으로 제도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카카오톡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