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상태의 뇌경색 환자 진료와 관련해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에 대해 의료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응급의료의 현실을 외면한 과도한 형사 판단으로, 선의의 진료까지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면 응급실 현실은 더욱 위축되고 필수의료 붕괴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황규석)는 8일 '응급의료 붕괴시키는 과도한 형사판단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사법의학의 폭력 아래 응급의료 현장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으며, 이번 판결은 그 붕괴를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앞서 2018년 6월 충남 천안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술에 취해 복통과 구토, 의식장애 등 뇌경색 증상으로 환자가 이송됐다. 검찰은 신경학적 검사를 시행하지 않고 뇌 CT 검사만 하는 등 환자의 진료를 소홀히 하고 퇴원시켜 뇌경색 악화로 신체 일부가 마비되는 영구적 장애를 입혔다는 혐의(업무상 과실치상 등)로 당시 전공의였던 의사 2명을 기소했다. 대전지법은 "환자에게 업무상 과실로 영구적 장애라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돼 엄중한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다"며 의사들에게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사회는 "또 한 번의 역대급 판결"이라며 "지금 대한민국 응급의료 현장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판단보다, 훗날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무너지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사회는 "응급실은 모든 질환을 완벽하게 확진하는 공간이 아니다"라며 "제한된 시간과 인력,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가장 위급한 상황을 우선 배제하며 환자의 생명을 지켜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음주, 구토, 의식저하, 신경학적 증상이 혼재된 환자에서 초기 진단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의료현장의 상식"이라며 "그럼에도 결과론적 판단만으로 당시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묻는다면, 앞으로 어느 의사가 응급실에서 적극적 진료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의사회는 "이번 판결은 단순한 개별 사건 판단을 넘어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 전체에 대한 사망선고"라며 "현장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 결과만으로 의료행위를 재단하고 형사처벌을 남발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방어진료와 필수의료 붕괴뿐"이라고 꼬집었다.
이미 젊은 의사들은 응급의학과 지원을 기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증응급환자를 책임지는 현장은 빠르게 붕괴되고 있는데도 사법부가 의료현실을 외면한 채 과도한 형사책임을 부과한다면 대한민국 응급의료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게 의사회의 지적이다.
특히 의사회는 "이번 판결은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의료사고특례법(필수의료 형사처벌특례) 논의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며 "의료사고특례법이 현장 의료진에게 실질적 보호장치가 되지 못할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는 선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미 '선의의 진료'조차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름뿐인 특례와 제한적 면책 조항만으로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사법부를 향해 "의료행위는 결과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적 판단 행위이며, 특히 응급의료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영역임을 직시해야 한다"며 "선의의 진료행위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은 결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응급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를 향해서도 "보여주기식 제도 논의를 중단하고, 필수의료 및 응급의료 종사자들이 최소한의 사법 안전망 속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제도적 보호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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