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필수의료지만 정책 지원은 여전히 미흡"

[인터뷰] 허준 한림대한강성심병원장
화상 경험자 3명 중 1명 직업으로 복귀 어려워
취약층 발생률 높고 재활이나 심리문제도 심각
공공 한계 보완해줄 가교역할로 기업후원 기대

허준 한림대한강성심병원 병원장


"화상 의료는 특별한 의료 분야가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기에 특별해진 거죠. 화상경험자들도 그렇게 특별해져 버린 존재들이고요."

허준 한림대한강성심병원 병원장은 국내 화상 의료 현장에서 30여년 외길을 걸으며 수천명의 화상 경험자를 치료해온 화상전문 외과의사다. 화상 외과의사는 사명감만으로는 매일을 버텨내기 쉽지 않은 직업이다. 화상 의료 현장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데 반해 매일 마주해야 하는 개인의 비극은 심리적으로도 결코 가볍지않기 때문이다.

화상 경험자는 치료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선 후에도 재활과 심리 치료, 사회 복귀까지 수년 어쩌면 수십년의 시간이 이어진다. 그 긴 여정을 환자 혼자 걷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기업과 사회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허 병원장은 강조한다.

Q1. 국내 화상경험자 규모와 특성은?

매년 약 220만명이 크고 작은 화상으로 진료를 받고 있고, 2400명 이상의 중증화상 환자가 발생하고 있어요. 매일 6,000건 이상의 화상 진료가 이뤄지고, 하루 7명 정도의 중증화상 환자가 발생하는 셈이죠.

화상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사고예요. 주로 집에서 발생하고, 원인도 끓는 물이나 국물 같은 뜨거운 액체에 의한 사고가 가장 많거든요. 특히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는 4세 이하 영유아 발생률이 높아요. 아이들은 체구가 작다 보니 같은 사고에서도 화상 면적이 넓어지는 경향이 있고요.

또 화상은 노후한 주거 환경에 노출된 저소득층이나, 고온과 화염 등 화상 위험이 높은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자에게서 더 자주 일어난다는 특성도 있습니다.

Q2. 취약계층 발생 빈도가 높은 만큼 경제적 부담도 상당하겠네요.

국가 의료 체계 안에 크게는 산업재해 환자와 일반 건강보험 대상 환자가 있는데, 건강보험 환자들은 고가의 치료제를 사용하기 힘든 게 현실이에요. 중증화상으로 인해 광범위 피부 결손이 있으면 자기 피부가 모자라기 때문에 배양 피부를 사용해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 치료제가 워낙 고가다 보니 산업재해 환자들에게만 일부 적용되고 있고, 건강보험 환자들은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거죠.

화상은 신체 부위가 소실되거나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아 간병인 부담도 큰 재해예요. 통계상 중증화상 환자의 1인당 평균 의료비가 약 1500만원으로 추산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건 비급여 항목이 포함되지 않은 최소한의 비용이에요.

실질적으로 화상 치료 비용의 대부분은 중환자실 입원, 피부이식, 성형과 같은 비급여 항목이라 기하급수적으로 자부담이 늘어나게 되죠. 의료비가 지원된다고 해도 선부담 후지급 방식이라 저소득층에게는 실효성이 낮고요.

Q3. 어렵게 퇴원한다 해도 병원 밖 삶도 쉽지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전에 치료했던 환자 중에 항문까지 손상돼 배변장애가 생겼을 만큼 화상 정도가 심했지만, 치료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던 똘똘한 초등학생 친구가 있었어요. 근데 그 친구가 퇴원 몇 달 뒤, 저희 병원 정신과에 입원해 다시 만나게 된 거예요. 학교로 복귀했지만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우울증을 겪게 된거죠.

실제 화상경험자의 13~23%가 우울장애를, 13~45%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 것으로 보고돼 있어요. 해외 연구에서도 화상경험자 3명 중 1명이 사고 이후 어떤 형태의 직업으로도 복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한 치료 과정과 만성적인 통증도 문제지만, 외모 변화로 인한 자존감 하락과 사회적 편견도 화상 경험자의 심리적 어려움을 깊게 만드는 거죠.

Q4. 국가 제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한계도 분명해 보입니다.

화상은 국가가 인정한 사회적 필수의료 분야지만, 제도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해요.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은 소위 빅5라고 하는 대형 병원을 위주로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대형 병원들은 화상을 주요한 의료 분야로 인식하지 않죠. 저희가 아무리 국내에서 가장 큰 화상 전문 병원이라고 해도 화상이란 의료 분야 자체가 비인기 분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기에 정책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경우가 많아요.

의료정책상 진료수가가 낮아 보상을 제대로 못 받는 구조라 의료진을 영입하는 일도 쉽지 않고요. 화상외과 의사들은 우스갯소리로 스스로를 '미친 자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만큼 이 분야가 현실적인 보상보다는 사명감과 희생에 의해 유지돼 왔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헌신에만 기대서 적정한 화상 의료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필수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화상이나 산부인과처럼 생명과 직결되고 희귀·고위험 진료가 불가피한 영역에는 보다 우선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거죠.

 

허준 병원장이 선대 이사장인 윤대원 박사 기념관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Q5. 그런 점에서 기업 후원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공공의 한계를 보완하는 중요한 가교역할이죠. 공공의 제도 개선과 재정 확충에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거든요. 그 간극을 메워 주는 역할은 기업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화상 의료처럼 수익 구조가 취약하지만 사회적 파급력이 매우 큰 분야에서 기업 후원의 역할은 더 크다고 할 수 있죠.

Q6. 화상 분야 후원에서는 K 스킨케어 브랜드 닥터지의 사례가 자주 언급됩니다.

닥터지와는 5년째 깊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닥터지 창업자 안건영 박사님과 같은 중앙대 의과대학 출신이라 대학 시절에 실습을 나가 뵀던 경험이 있어요. 삶에 있어 '화상'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박사님과 내적 친밀감도 느끼기도 해요(웃음).

박사님은 어린 시절 화상을 겪은 경험을 계기로 피부과 전문의의 길을 걷게 됐고, 누구나 '건강한 피부'를 넘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닥터지를 만드셨어요.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창업자의 화상 경험이 개인적인 서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브랜드 철학으로 이어졌다는 점이에요.

닥터지의 브랜드 메시지가 안건영 박사님의 공감과 치유의 철학을 담은 'Can I help you'라고 하더라고요. 이건 환자들을 만나 온 의사들이라면 다 알아요. 치유의 시작은 거창한 게 아니라 공감의 태도와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되는 거라는 걸요.

그래서 저도 늘 진료를 시작할 때 환자들에게 '아프시죠?'라는 말을 먼저 건네요. 이렇게 닥터지가 가진 화상 경험자의 회복과 자립, 존엄에 대한 방향성과 철학이 저희와 비슷하다 보니 더 장기적이고 깊은 협업을 이뤄올 수밖에 없었죠.

Q7. '공감과 치유'의 브랜드 철학이 실제 화상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나요?

먼저 아주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현실적 어려움에 공감해 보내주신 물품 후원이 도움이 많이 돼죠. 화상을 입으면 땀샘이 손상돼 만성적인 건조증과 가려움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거든요. 닥터지 제품들이 민감피부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들이라 화상 환자들이 쓰기 적합해요. 화상 경험자들은 다량의 보습 제품 구매가 필요하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요.

하지만 닥터지가 더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물품 지원을 넘어, 화상 이후의 삶을 어떻게 회복하고 살아갈 것인가까지 함께 고민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임직원 봉사 활동 하나를 해도 화상 경험자를 직접 초대해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고 그 경험을 확산시켜요. 화상 경험자들이 사회 안에서 더 자주 보여지고, 관계를 맺을 기회가 많아질수록 그들이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이라고 사회가 인식하게 되거든요.

Q8. 결국은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사회 전체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겠죠.

화상 의료 분야에서의 연대는 결국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은 국내 유일의 화상 전문 대학병원이지만, 구조적으로 적자를 감내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한때 연간 100억원이 넘는 적자를 체질 개선으로 상당 부분 줄여왔지만, 갈 길이 아직 멀어요. 그럼에도 선대 이사장이신 고(故) 윤대원 박사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화상센터는 공공성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하며, 적자가 나더라도 운영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병원 의료진과 직원들이 특별히 거창한 사명감으로 일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이 공간에서 만나는 화상 경험자들과 가능한 한 함께 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죠.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효율에만 함몰되기보다는, 저희 병원처럼 행복과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선택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상대적으로 소외돼왔던 화상 의료분야도 그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요. 어쩌면 연대란 그런 마음들이 조용히 겹쳐져 일어나는 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닥터지와 같은 기업과의 동행도 그러한 연대의 마음에서 시작돼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거고요.

Q9. 앞으로의 박사님의 행보도 기대가 됩니다.

저는 사람은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대신 '많은 욕심을 갖기보다는, 큰 욕심을 품자'는 주의에 가까워요. 살면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욕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병원에서는 현실적으로 헤쳐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실적, 수가, 경영 지표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진짜로 품고 있는 꿈은 우리 병원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병원을 거쳐 갈 후배들만큼은 '많은 욕심'에 소진되지 않았으면 해요. 대신, 얻기 어렵지만 가장 귀한 욕심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병원의 모든 의사와 직원들이 그런 마음으로 일할 수 있다면, 화상 경험자들이 우리 병원 내에서 치유와 회복, 자립을 이루는 일도 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걸 가능한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 지금 제가 이 자리에 머무는 동안 해내야 할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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