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지난 25년간 38개의 신약을 개발했음에도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은 단 한 건도 배출하지 못한 이유로 치밀한 상업화 전략의 부재를 꼽고 있다. 단순한 임상적 우수성만이 나닌 실제 승패는 전략적 상업화에 달려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미국 FDA가 허가한 신약 중 약 27%가 블록버스터로 성장했으며, 키트루다, 빅타비 등 메가 블록버스터들은 초기 국내외 임상 설계부터 다양한 적응증으로 빠르게 확대하며 시장을 장악했다. 반면, 한국은 의미 있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 신약이 11개에 불과하며 성공률도 30%에 미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다는 분석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분석한 글로벌 블록버스터 사례를 보면, 블록버스터는 우연한 히트작이 아니라 처음부터 '상업화 완주'를 전제로 설계된 신약이라는 공통점이 도출된다. 통상 블록버스터 신약은 연 매출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의약품을 의미하며, 이들 100여 개 남짓한 제품이 전 세계 의약품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시장 지배력이 크다.
블록버스터는 단순히 "많이 팔리는 약"을 넘어 연구개발 재투자, 후속 파이프라인 확장, 인수·합병(M&A) 재원을 뒷받침하는 산업 구조의 핵심 자산으로 기능한다. 2014~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신약 213개 가운데 약 27%가 블록버스터로 성장했고, 이 시기 면역항암제·항바이러스제·대사질환 치료제 등이 잇따라 등장하며 글로벌 시장 판도를 재편했다. 키트루다(Keytruda), 빅타비(Biktarvy) 같은 연 매출 100억 달러 이상 '메가 블록버스터'도 이 시기에 나왔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의 성패를 단순한 임상적 우수성에서 찾지 않는다. 약효는 출발점에 불과하며, 이후 상업 전략이 진짜 승패를 가른다는 분석이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 연 매출 10억 달러를 넘긴 블록버스터 신약들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공통 조건을 공유한다.
첫째는 미충족 의료수요를 정확히 겨냥한 적응증 선택이다. 환자 수가 많지 않더라도 치료 옵션이 거의 없는 영역이라면 충분한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스트렌식(아스포타제 알파)은 환자 수가 극히 적은 초희귀질환 저인산증(HPP) 치료제지만, 기존에 근본적 치료제가 없던 공백을 정확히 파고들어 평생 치료가 필요한 질환 특성과 결합되며 연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한 블록버스터로 성장했다.
둘째는 개발 초기부터 글로벌 임상을 염두에 둔 설계다. 미국 FDA 허가를 끝점이 아니라 글로벌 확장의 출발점으로 두고, 규제 환경과 표준 치료를 기준으로 임상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는 다국가 임상과 비교 임상을 전제로 한 전략을 통해 흑색종 단일 적응증에서 출발했지만 폐암·위암·유방암 등으로 적응증을 빠르게 확장하며 연 매출 2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메가 블록버스터로 도약했다.
셋째는 적응증 확장과 병용 전략을 통한 시장 확대다. 블록버스터의 핵심은 한 번의 히트에 그치지 않고 치료 영역 전체를 장악하는 데 있다. 길리어드사이언스의 HIV 치료제 빅타비는 단일 약물이 아닌 복합요법, 치료 라인 확장, 복용 편의성 개선을 결합해 초기 치료제에서 1차 치료 표준으로 올라서며 처방 환자군을 넓혔고, 경쟁 약물이 존재하는 시장에서도 빠르게 점유율을 확보했다.
넷째는 보험, 약가, 마케팅을 아우르는 상업 전략이다. 임상 성공이 자동으로 매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로슈가 인수한 폐섬유증 치료제 에스브리에트(피르페니돈)다. 소규모 바이오텍에서 개발된 이 약은 로슈 인수 이후 글로벌 보험 등재 전략과 전문의 타깃 마케팅이 결합되며 매출이 급성장했고, 같은 계열 경쟁약이 있음에도 시장 접근·유통·마케팅 역량이 승패를 갈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섯째는 파트너십과 인수·합병의 적극적 활용이다. 다수의 블록버스터는 바이오텍 단독 성과가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의 상업화 역량과 결합해 완성됐다. 스위스 악텔리온이 개발한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업트라비(셀렉시팍)는 차별화된 경구 제형으로 니치 시장에서 성과를 축적한 뒤 존슨앤드존슨에 인수되며 글로벌 상업화 인프라를 등에 업고 블록버스터로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발 역량은 내부, 상업화 역량은 외부와 결합한 모델"로 규정하며, 파트너십이 실패를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선택지였다고 평가한다.
보고서는 이 다섯 가지 조건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블록버스터가 탄생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개발 성공'을 넘어서 '사업 성공'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혁신과 더불어 이 같은 상업화 설계를 초기 단계부터 내재화하는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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