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2명 중 1명이 인권침해를 경험하고도 대부분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간호협회가 간호사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대응에 나섰다. 간호사의 마음을 돌보는 '심리상담 전문가단'을 출범시키며, 인권 보호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착수했다.
대한간호협회(회장 신경림)는 21일 서울 간호인력지원센터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간호사 심리상담 전문가단 발대식'을 열고 간호사 인권 보호와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본격적인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번 발대식에는 간호협회 및 간호인력지원센터 관계자, 심리상담 자문단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나눴다.
신경림 회장은 발대식에서 '간호사 심리상담 지원사업 취지문'을 낭독하며 "오늘 행사는 단순한 출범이 아니라 간호사의 인권을 회복하고 건강한 마음을 되찾기 위한 선언의 자리"라며 "간호사가 존중받는 환경이 조성돼야 국민의 생명도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이어 "심리상담 전문가단은 인권 회복의 최전선이자 조직문화 혁신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간호협회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지원체계를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인권침해 절반 이상이 간호사… 구조적 문제 여전"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의료인력 인권침해 상담센터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접수된 인권침해 상담 6000여 건 중 간호사 관련 사례가 57.9%(3487건)에 달했다. 이는 간호사 인권침해가 개별 사건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간호협회가 이날 공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응답 간호사 절반(50.8%)이 최근 1년 내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이 중 71.8%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가장 흔한 피해 유형은 △폭언(81.0%) △직장 내 괴롭힘 및 갑질(69.3%)이었고, 가해자는 '선임 간호사'(53.3%), '의사'(52.8%), '환자 및 보호자'(43.0%) 순으로 나타났다. 피해 장소는 병동 등 환자와 보호자가 있는 공간(79.0%)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신고하지 못한 이유로는 "신고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67.2%)가 가장 많았다. 실제로 신고 후에도 "기관의 변화가 없었다"고 답한 응답자가 69.0%에 달했다.
"참아라, 그냥 넘겨라"… 현장 증언이 드러낸 병원의 민낯
현장 간호사들의 증언은 인권침해의 일상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 병원 간호사는 "보호자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병원은 '그냥 참아라'는 말만 했다"며 "그 일을 겪은 뒤 환자 얼굴만 봐도 숨이 막혔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간호사는 "상급자의 기분에 따라 폭언이 오가고, 사소한 실수에도 모욕이 이어진다"며 "이런 환경에서 후배를 보호할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수술실 근무 간호사도 "수술 중 '병신'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며 "신고 시스템이 있지만, 누가 신고했는지 바로 드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고 전했다.
이번 조사에서 간호사들은 인권침해 이후 겪은 감정으로 △분노(80.3%) △자존감 저하(74.5%) △우울·좌절감(66.3%)을 꼽았으며,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응답도 17.5%에 달했다. 이는 단순한 직장 내 스트레스가 아닌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을 시사한다.
간호협회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신고·조치 전(全) 주기 표준화 △신고자 보호 및 2차 피해 금지 △재발 방지 체계 구축 등을 포함한 제도 개선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또한 새로 출범한 심리상담 전문가단을 중심으로 전국 간호사 대상 심리상담 및 조직문화 개선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신경림 회장은 "간호사의 마음이 건강해야 환자의 생명이 안전하다"며 "이번 출범이 간호사의 존엄을 회복하고, 의료현장의 문화를 바꾸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다.
Copyright @보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