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지질혈증 고위험환자 치료 막힌다… "가이드라인·급여기준 엇박자"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급여기준 현실화·만성질환관리사업 포함·검진 주기 단축 촉구

정책토론회 패널토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 이상지질혈증 치료지침은 저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LDL-C) 목표치를 점차 엄격하게 낮춰 왔다. 최근 가이드라인은 고위험군 환자의 경우 LDL-C를 55mg/dL 미만으로 낮출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급여 기준은 여전히 70mg/dL 이상으로 묶여 있다.

결국 환자 진료 현장에서는 "치료해야 할 환자를 앞에 두고도 약을 처방할 수 없는 모순"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11일 열린 지질·동맥경화학회 정책토론회에서 학회는 이 같은 괴리를 강하게 지적하며, ▲급여기준 현실화 ▲만성질환관리사업 포함 ▲국가검진 주기 환원 등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는 이날 콘래드 서울에서 제14회 국제학술대회(ICoLA 2025) 개최를 기념해 정책토론회를 열고, 심뇌혈관질환의 핵심 위험요인인 이상지질혈증 관리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 대안을 모색했다.

치료지침은 'LDL-C 55 미만', 급여기준은 '70 이상'

첫 발제자로 나선 정인경 교수(경희의대 내분비대사내과)는 국내 20세 이상 성인 4명 중 1명(27.4%)이 고콜레스테롤혈증을 앓고 있으며, 유병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20대에서도 허혈성 심질환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조기 진단과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국내 치료지침은 심혈관질환 초고위험군의 LDL 콜레스테롤 목표치를 55mg/dL 미만으로 낮추는 등 점차 세분화하고 있지만, 지질강하제 급여 기준은 2018년 이후 바뀌지 않아 임상 현장에서 큰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급여 기준은 관상동맥질환자 등 초고위험군이라도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70mg/dL 이상일 때만 약물 치료를 인정한다. 이로 인해 지침상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55~69mg/dL 구간의 환자들은 사실상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 교수는 "이러한 현실은 고위험군 환자의 치료를 막아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최신 치료지침을 반영한 급여 기준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혈압·당뇨만 관리? 이상지질혈증 빠진 만관사업은 반쪽짜리"

일차의료 현장에서는 고혈압·당뇨병 중심으로 설계된 만성질환관리사업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백재욱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급속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에 대응하려면 일차의료기관 중심의 관리체계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실제 임상에서는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을 함께 관리하는 것이 표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본사업은 고혈압과 당뇨병에만 국한돼 있으며, 만성질환관리료(AH200)가 적용되는 11개 질환군에서도 이상지질혈증은 제외돼 있다.

백 부회장은 "이상지질혈증을 만성질환관리 본사업에 포함하고, 교육상담료와 관리료 등을 신설해 의원급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며 "**지자체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콜레스테롤 검사 사업 등을 의원급으로 이관해 검진과 치료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4년은 너무 길다"…국가검진 2년 주기 환원 한목소리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상지질혈증 조기 발견의 핵심인 국가건강검진 주기를 현행 4년에서 2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이태인 건강검진학회 대외협력이사는 "이상지질혈증은 증상이 없어 혈액검사로만 진단할 수 있기에 주기적인 검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4년이라는 검진 주기는 조기 발견의 기회를 놓치게 해 질병을 키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은지 교수(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역시 "2024년 말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생애 전주기에 걸친 LDL 콜레스테롤 누적 노출 관리가 중요하다"며 변화한 질병 구조에 맞춰 검진 주기와 시작 연령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참석자들은 ▲국가검진 사후관리 강화를 위해 이상지질혈증 확진 진료 시 본인부담금 면제 ▲만성질환관리료(AH200) 대상에 이상지질혈증 포함 등을 통해 검진-진단-치료로 이어지는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 긍정 검토" vs "현장 체감 어려워"…스타틴 불신 해소 과제

이어진 패널토의에서는 정책 개선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인 검토 의사와 함께, 일선 현장에서 체감하는 어려움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곽경근 대한내과의사회 부회장은 "검진 주기, 연령 등 다양한 개선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현재 질병청과 관련 타당성 연구를 진행 중이며, 결과가 나온 후 재정 등을 고려해 다시 검토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고혈압, 당뇨병처럼 유병률이 높은 만큼 이상지질혈증의 사후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으며, 첫 진료 시 본인부담금 면제 등도 심도 깊게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현 한국건강검진학회 총무이사는 현장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검진에서 고지혈증으로 진단돼도 환자 대부분은 바로 약물치료를 시작하려 하지 않는다"며 "운동으로 관리하겠다며 유튜브를 검색한 뒤,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건강기능식품을 복용하다 간 수치가 오르거나 위궤양이 생겨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총무이사는 "의약품은 광고를 못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은 가능하고 스타틴에 대한 부정적 정보가 만연해 환자들이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큰 문제"라며 "정부와 학회 차원에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전하윤 보건복지부 사무관은 "조기 발견과 빠른 치료가 중요하다는 점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며, 정부도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면서도 "스타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큰 만큼, 학회가 나서서 잘못된 주장을 자제시키고 올바른 정보를 알리는 홍보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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