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사계절이 따로 없는 것 같다. 겨울철에 딸기가 나오고 때를 벗어난 음식들이 너무 많다. 나는 냉장고가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자랐다. 겨울철 과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정월 대보름이면 호두를 위시해 많은 견과류를 먹을 수 있었다. 한겨울 동지팥죽이나 밤참으로 쑤어 먹던 메밀묵이 그립다.
봄철이면 다양한 나물들과 보리밥을 먹었다. 5월 기호지방에서 많이 났던 밴댕이를 염장해 여름내 먹었던 추억도 있다. 여름에는 특히 참외나 수박을 많이 먹었다. 땀이 날 때 먹는 참외나 수박은 맛도 맛이지만 영양공급에도 도움이 됐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산에서 버섯을 따 먹기도 했다.
가을은 시골 사람들에게 가장 풍성한 계절이다. 밤, 대추는 물론 쌀도 수확해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 먹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저장된 음식을 먹었다. 곶감과 고염이 참 맛있었다. 이제 도회지에서는 고염을 찾아보기 힘들다. 제사 때면 계절에 관계없이 땅속에 묻어뒀던 조기를 꺼내 쪄냈고, 한겨울이면 얼어버린 동태에 무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 먹었다.
이제는 전기가 발달해 컴컴한 저녁은 없어지고 냉장고 덕분에 음식을 오래 먹을 수 있게 됐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러나 내가 그리던 시골에는 이제 빈집만 늘어간다. 집집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정경은 모두 옛날얘기가 됐다.
가까운 일본에도 시골에는 빈집들이 참 많다. 동경 번화가에서 전차를 타고 30분만 가면 줄줄이 늘어선 빈집들을 볼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달라지는 것 같다.
서울의 유명한 먹거리로는 첫째로 설렁탕을 꼽을 수 있다. 어쩌다 서울에 올라올 때면 골목마다 설렁탕집이 그렇게 많았다. 조선시대 서민들이 고관대작들의 행차를 피해 다니기 위해 만든 좁은 골목인 종로 피맛골에는 아직도 '이문설농탕'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전 역전에도 한밭식당이 있었지만, 예전의 번화한 모습은 사라졌다.
당시 종로 피맛골에는 맛집들이 참 많았다. 도시개발과 지역정비 사업으로 세운상가가 생겨나며 피맛골이 중간에 끊어지고 예전 식당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나도 늙어가면서 발전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옛날 생각을 되살리며 빈터마다 포장마차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게 진짜 발전이라 생각한다. 도시개발이나 정비사업도 좋지만, 옛 문화도 지키고 보존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때가 되면 제철에 나는 음식들이 그리워진다. 알이 가득 찬 밴댕이를 먹을 생각에 벌써 음력 5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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