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의료 본질 훼손"… 의료계-정부, 제도화 놓고 '평행선'

의협 의료정책포럼서 '안전성과 주도권' 문제 집중 포화
복지부 "초·재진 논란 넘어 임상 가이드라인 논의" 주장

(왼쪽부터)가톨릭의대 김헌성 교수, 대한내과의사회 조승철 총무이사, 의협 전성훈 법제이사, 보건복지부 성창현 의료정책과장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둘러싸고 의료계와 정부 간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의료계는 "의료의 본질과 건강권을 훼손하는 제도"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정부는 "제도화 논의는 의료계의 임상 가이드라인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며 공을 다시 의료계로 넘겼다. 양측은 '초진·재진' 개념부터 접근방식까지 본질적으로 평행선을 달리는 모습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원장 안덕선)은 7일 의협회관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문제점'이란 주제로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15년간 비대면 진료를 지지해온 전문가의 자기반성적 경고를 시작으로, 현재의 플랫폼 중심 비대면 진료가 안전성, 효율성, 법리적 타당성 모든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의료계의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는 '초·재진'이라는 행정적 논란을 넘어, 의료계가 주도하는 임상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혀 향후 논의의 장을 열었다.

"15년 쌓아온 근거, 편의성 논리에 붕괴될 것"

첫 발제를 맡은 가톨릭의대 김헌성 교수는 15년간 비대면 진료를 연구해 온 전문가로서, 현재의 상황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했다. 지금의 방식은 15년간 쌓아온 모든 근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고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진료는 '병원에 오지 말라'는 편의성에서 출발했지만, 이는 의사 주도하에 만성질환을 관리하던 전통적, 근거 기반 비대면 진료와는 목적부터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진행한 연구 결과는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환자들은 비대면 진료 이용 동기로 '시간 절약 및 편리성(65.0%)'을 압도적으로 꼽았고, 약사들은 조제 경험의 절반(49.0%)이 미용 목적이었다고 응답했다.

또한 피부과(24.4%), 산부인과(30.5%) 등에서 초진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의료의 주도권이 플랫폼과 환자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위험한 신호"라며 "플랫폼 문제뿐 아니라 의사 사회의 자정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전성 없는 의료는 도박"…법리적·제도적 허점 조목조목 비판

이어진 패널 토의에서는 비판의 수위가 더욱 높아졌다.

의협 전성훈 법제이사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담보되지 않는 의료는 도박에 불과하다"며 "비대면진료는 문진과 제한적 시진만 가능할 뿐, 촉진·타진·청진 등 필수적인 진찰이 불가능해 정확한 진단이 어려우므로 국민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료 접근성 개선을 명분으로 삼지만, 실제 의료취약지 이용자는 1% 미만"이라며 "1%의 편의를 위해 99% 국민을 부정확한 진단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은 합당한 입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오진 가능성이 높은 구조임에도 의사의 책임 제한 규정이 전무한 법안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한내과의사회 조승철 총무이사는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현재의 비대면 진료는 초심을 잃고 의사와 환자가 아닌 정부와 플랫폼이 주인공이 됐으며, 5년간의 시범사업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 

조 이사는 "비대면 진료를 연속해서 받는 비율이 절반이 넘는 것은 큰 문제"라며 "두 달 전 심평원에 초·재진 비율 등 14가지의 기본 데이터를 요청했지만, '보유하고 있지 않거나 별도 가공이 필요해 제공이 곤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런 깜깜이 상황에서 어떻게 제도를 논의할 수 있겠는가"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또한 미국, 일본, 프랑스 등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은 정신질환 진료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일본은 단골 의사의 비대면 초진 시 처방을 금지하며, 프랑스는 연고지 의사에게 화상 통화로만 진료가 가능한 원칙이 있다"면서 "반면 우리나라는 서울·경기 지역에 청구 건수의 절반이 쏠리는 등 지역 의료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초·재진 논란 넘어, 학회가 임상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토론자로 나선 보건복지부 성창현 의료정책과장은 문제 해결의 공을 의료계로 넘겼다. 성 과장은 "오늘 이 자리가 '초·재진'이라는 행정적 논란에서 벗어나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하는 형태로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 과장은 "초·재진은 진찰료 구분을 위한 행정적 개념일 뿐, 임상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게 왔던 환자인가'와 '새로운 증상을 호소하는가'이다"라며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비대면 진료가 안전성과 의료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임상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건 복지부가 만들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성 과장은 또 "고혈압, 당뇨병, 혹은 특정 피부질환 등 각 학회와 의사협회가 주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시면, 정부도 이를 기반으로 발전적인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며 의료계의 주도적인 역할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아울러 "의사의 전문적 판단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의사의 진료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형벌을 부과하는 방식보다는, 의사협회가 만드는 가이드라인과 직업윤리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결국 이날 포럼은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가 국민 편의성이라는 가치와 국민 건강권이라는 더 큰 가치 사이에서 심각한 충돌을 빚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의료계의 안전성 우려와 정부의 '가이드라인 선행' 요구가 맞물리면서, 향후 비대면 진료 논의는 의료계가 구체적인 임상 지침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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