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통증의학회, '한국표준마취안전기준' 제정 나선다

마취 실명제, 신포괄수가제 수술 항목 마취료 신설 주장

마취통증의학회 연준흠 회장

"마취는 환자 안전을 위해 고도로 훈련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시행해야 하지만 현실은 간호사, 비전문의 등에 의해 이뤄지는 일이 많아 의료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환자 안전을 위해 마취 실명제, 신포괄수가제 수술 항목 마취료 신설 등이 꼭 필요합니다."

마취통증 관련과 의사들이 보다 안전한 마취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한국표준마취안전기준' 제정 추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회장 연준흠)는 12일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한국표준마취안전기준 제정과 정부의 필수의료지원대책에 마취영역이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의뢰된 마취관련 의료사고를 분석해보면 92%의 환자에서 사망을 포함한 영구적 손상이 발생했고, 그 중 43%는 표준적인 마취관리를 했다면 예방이 가능했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내시경이나 성형, 피부 시술 등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정맥마취 관련해서 사망, 영구장애 후유증을 유발한 의료사고의 경우 비(非)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에 의해 마취가 시행된 비율이 92.3%나 됐다.

실제 지난 2018년 부산의 대리수술에 의한 뇌사 사건, 2021년 간호사의 대리마취에 의한 산모사망 사건 등 마취가 명백히 환자안전에 중요한 의료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의료인에 의해 마취가 행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마취통증의학회 연준흠 회장은 "이처럼 마취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의료인에 의해 많이 시행되는 것은 비현실적인 건강보험요양급여 수가 체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보고된 '원가계산 시스템 적정성 검토 및 활용도 제고방안 2단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취료의 원가보전율은 72.7%에 불과하다. 집계가 불가능한 병원의 인적, 물적 투입을 고려한다면 실제 마취수가는 원가 대비 50%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고용에 의한 의료행위는 적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또한 건강보험요양급여에서는 수술을 하는 집도의가 마취의를 고용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동시에 마취를 시행하더라도, 환자의 안전을 위해 마취를 시행하는 의사를 고용해 개별적으로 마취를 시행한 경우와 동일한 마취수가가 지급된다.

마취통증의학회 박상진 홍보이사

마취통증의학회 박상진 홍보이사는 "우리나라 의료법에서 의사는 모든 의료행위를 시행할 수 있고, 전문의만 해당 의료행위를 하도록 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법적으로 제한이 없는 상황이라도 타과 전문의가 해당과의 진료행위를 시행할 경우 해당과의 전문의 수준에 맞는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괄수가, 신포괄수가의 경우 마취료가 별도로 산정되지 않으므로 마취의와 회복실 담당 간호사 등의 마취분야 인력고용과 관련시설 투자를 더욱 위축시켜 환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다. 

학회는 한국표준마취안전기준 제정에도 나설 계획이다. 현재 마취 관련 의료서비스에 대한 적정한 기준이 제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평원)에서 4년에 한 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2년마다 마취서비스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의평원의 급성기 병원인증기준 평가는 상급종합병원, 전문병원, 요양병원, 정신병원 등 특정 전문병원을 대상으로 해 일반 종합병원, 개인병원 등은 제외돼 있거나 조사항목이 미흡한 실정이다.

심평원이 시행하는 마취적정성평가는 의평원 평가보다는 구체적이고 명확하지만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만 대상으로 평가하고 있어 개인의원은 평가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박상진 이사는 "현재 마취의료서비스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4년에 한번씩,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2년마다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며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급성기 병원인증기준 평가는 상급종합병원, 전문병원, 요양병원, 정신병원 같은 특정 전문병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실제로 환자들이 많이 찾는 일반 종합병원, 개인병원의 경우 그 평가 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조사항목 또한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어 "심평원에서 시행하는 마취적정성 평가는 앞의 평가에 비해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이것을 바탕으로 의료질 분담금(과거 특진비, 등급에 따라 같은 마취에 대해 차등지급)을 배분한다"며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만을 대상으로 평가하고 있어서 가장 안전에 취약할 수 있는 개인의원이 평가대상에서 빠져 있는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연 회장은 "학회는 환자안전위원회를 구성해 전신 마취나 수술을 위한 부위마취 과정에서 환자 안전을 위해 갖춰야 할 시설, 약제, 인력, 교육과정 등을 국내 의료기관 규모에 맞는 기준을 제시하고, 향후 학회 차원에서 정기적인 인증 시스템을 시행해 보다 안전한 마취의료 서비스를 제공코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기관들에서 진행하고 있는 마취 관련 평가는 개원의 참여가 쉽지 않다"며 "당초 평가 기준을 설계할 때 병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개인의원에 대한 마취서비스 평가 항목이나 지표를 별도로 개발하고 적용해야 하는데, 이를 학회가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편, 마취통증의학회는 1956년 대한마취과학회를 시작으로 67년 동안 마취와 통증 그리고 중환자 진료의 전문화를 선도해 온 학회로서 현재 7000여명의 회원과 7개 지회, 16개 세부전공학회를 운영 중이다. 

매년 학회 주관 하에 종합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는 국제학술대회로 변경해 개최하고 있다. 다음 학술대회는 학술대회 개최 100회를 맞이해 2023년 11월 9일부터 3일간 서울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마취통증의학회 대표 학술지인 Korean Journal of Anesthesiology(KJA)는 2021년 JCR (Journal Citation Reports)의 승인을 받아 마취통증의학 분야의 SCIE(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 학술지로 등재됐다. 최근 발표된 2021년 영향력 지수(impact factor)는 5.167점이며 이는 국내 SCIE 등재 저널 144종 중 19위, 마취학 분야 34종 중 10위로 아시아에서는 1위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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