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확대 속 신경과 경고…"수가도 안전도 빠졌다"
신경과의사회, 치매·뇌졸중 환자 대리처방 진찰료는 대면의 50%…전문 가산 신설 촉구
공공 플랫폼·질환별 임상 가이드라인 미비 지적…"환자 안전 담보할 장치부터 마련해야"
비대면 진료 확대와 통합돌봄 시행을 앞두고 신경과 진료 현장에서 제도적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치매·뇌졸중 등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은 보호자 상담과 약물 조정에 상당한 시간과 전문성을 투입하지만, 대리처방 진찰료는 대면 진찰료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여기에 비대면 진료의 안전 기준과 공공 플랫폼 구축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신경과의사회가 수가 현실화와 환자 안전대책 마련을 동시에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신경과의사회(회장 이상원)는 18일 서울드래곤시티 3층 그랜드볼룸에서 제45회 추계학술대회 및 기자간담회를 열고 신경과 진료의 전문성을 반영한 보상체계와 비대면 진료 안전성 확보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의사회가 제기한 핵심 문제는 치매·파킨슨병·뇌졸중·루게릭병 등 거동이 불편한 신경계 환자의 보호자 대리처방 수가다. 환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찰료가 낮게 책정돼 있지만, 실제 진료에서는 보호자의 설명을 토대로 환자의 상태를 추정하고 약물 조정과 돌봄 교육까지 해야 해 의료진의 부담이 크다는 주장이다.
이상원 회장은 "치매나 뇌졸중 등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화상 전화 등을 통한 비대면 진료로 증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보호자 대리처방에 의존하고 있다"며 "의사는 보호자의 주관적인 설명 속에서 환자의 숨은 문제를 유추하고 복잡한 약물 조정과 돌봄 주의사항을 재교육해야 해 직접 진료보다 훨씬 긴 상담 시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와 의사소통 어려움은 진료의 복잡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보호자가 전달하는 정보만으로 증상 변화와 약물 부작용 가능성을 판단해야 하고, 환자 상태에 따라 복용 약물을 조정하거나 이상행동에 대한 대처 방법을 안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러한 고도의 임상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면 진찰료의 50%만을 인정하는 현행 보호자 대리처방 수가는 의료 현장의 실질적인 수고와 타당성에 명백히 배치된다"며 "신경심리검사나 행동증상 평가 척도(NPI) 등 보호자를 통해 이뤄지는 평가에 대해 최소한 1.2배 수준의 정당한 보상 및 전문 가산 수가가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준현 정책부회장도 신경과 진료의 특수성을 반영한 보상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 부회장은 "치매나 뇌졸중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상담과 이상행동 평가는 필수적이지만, 정부의 필수·전문상담 시범사업에서 신경과는 제외됐다"며 "무조건적인 수가 인상이 아니라 적절한 진료 기준과 평가 체계를 세워 질 높은 진료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보상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회는 통합돌봄과 재택의료 확대에 대비해서도 신경과 전문 가산 도입을 요구했다. 고령의 신경계 질환 환자는 지속적인 약물 관리와 증상 관찰, 보호자 교육이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보상체계가 미흡하면 의료진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통합돌봄·재택의료 사업에 신경과 전문 가산을 도입하고, 환자 상태 평가와 보호자 상담 등 실제 진료에 투입되는 전문성과 노력을 보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대면 진료 확대 앞두고 안전성 우려…"공공 플랫폼부터"
수가 문제와 함께 의사회가 강하게 비판한 현안은 비대면 진료 확대다. 정부가 제도 시행을 추진하고 있지만 공공 플랫폼과 질환별 임상 가이드라인 등 필수 안전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국정감사 등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공공 플랫폼은 2028년에야 구축된다고 하는데, 당장 오는 12월 말부터 민간 플랫폼이나 전화를 통해 시행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직접 민간 플랫폼에 가입해 체험해 본 결과, 치매 등 중증 만성질환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장치가 턱없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특히 비만이나 탈모 처방처럼 환자가 평점 등을 기준으로 의료진을 선택하고 형식적인 사진 첨부만으로 처방이 이뤄지는 방식이 중증 신경계 질환 진료에 적용될 경우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회장은 "치매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가 적용되려면 반드시 직계가족 등 검증된 보호자가 동석해야 하고, 대리인의 인적 정보까지 철저히 확인되는 안전망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매 환자의 약물 관리 역시 주요 우려 사항으로 꼽혔다. 인지기능 저하로 자신의 증상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환자가 많고, 보호자의 관여 여부와 복용 약물 관리에 따라 진료의 안전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준현 부회장은 "치매 환자 다수가 복용하는 항정신병제 등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한 명확한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고, 처방된 약제가 제대로 복용되고 관리되는지에 대한 대책도 전무하다"며 "시행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까지도 의료 현장에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주어지지 않아 대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비대면 진료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환자 본인 확인과 보호자 자격 검증, 처방 약물 관리, 질환별 진료 기준 등 안전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인지기능이 저하된 환자는 일반적인 비대면 진료와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의사회는 제도 개선 요구와 함께 회원들의 임상 역량을 높이고 진료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학술 프로그램도 강화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통합돌봄법 시행에 따른 재택의료 환경 변화를 살펴보고, 성인 ADHD와 망상장애 등 감별과 접근이 필요한 질환을 다루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초청 강의를 마련했다. 신경과 진료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증상과 질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실제 진료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임상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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