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류마티스질환을 앓더라도 치료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를 면역·신경·대사 등 여러 생물학적 시스템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는 새로운 수학적 모델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제시됐다. 단일 염증 경로를 차단하는 기존 치료 전략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치료 불응성의 원인을 시스템 수준에서 해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류마티스내과 정성수·전찬홍·정혜민 교수팀은 류마티스관절염과 루푸스 등 류마티스질환의 치료 불응성을 설명하기 위해 '3축 통합 프레임워크(3-Axis Integrative Framework, 3-AIF)'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류마티스관절염을 비롯한 자가면역 류마티스질환은 생물학적 제제와 표적치료제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환자가 치료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거나, 초기 반응 이후 다시 악화되는 문제를 겪는다. 특히 여러 치료제를 순차적으로 사용했음에도 관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난치성 류마티스관절염(D2T, difficult-to-treat rheumatoid arthritis)은 임상 현장의 주요 난제로 꼽힌다.
기존 치료는 주로 특정 사이토카인이나 면역 경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실제 진료에서는 염증 수치가 정상화됐음에도 통증과 피로, 기능 저하가 지속되거나 반대로 임상 증상은 호전됐지만 염증 지표가 남아 있는 환자들이 나타난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특정 면역 경로 하나의 이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고, 여러 생물학적 시스템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질환 상태를 유지하는 '시스템 수준의 병태'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인체의 복잡한 생물학적 상호작용을 세 가지 축과 6개의 핵심 변수로 단순화한 수학적 모델을 구축했다. 세 축은 ▲장 점막·미생물·면역 관용 ▲신경·지방조직·면역세포 ▲세포 대사·스트레스 반응으로 구성됐다.
모델을 이용해 세 축의 상호작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인체의 상태가 단순히 '건강'과 '질환'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건강 상태, 잠재적·아관해 상태, 만성 활동성 질환 상태, 치료 불응성 상태 등 여러 개의 안정 상태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상태는 서로 다른 '골짜기'처럼 안정성을 갖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같은 류마티스질환 진단을 받은 환자라도 유전적 배경과 환경, 질환의 진행 과정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상태에 자리 잡을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동일한 치료에 대해서도 반응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일정 수준 이상의 자극이 가해지면 시스템 전체가 건강 상태에서 질환 상태로, 더 강한 자극이 지속되면 치료 불응성 상태로 이동하는 양상이 관찰됐다.
주목할 부분은 한번 질환 상태로 넘어간 뒤에는 질환을 처음 유발했던 자극을 줄이는 것만으로 기존의 건강 상태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 '히스테리시스(hysteresis·이력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류마티스질환에서 조기에 질환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질환이 일정 단계 이상 진행돼 새로운 안정 상태에 고착되면, 단순히 초기 유발 요인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질환 상태를 되돌리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핵심 결과는 질환 상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상위 3개 파라미터가 모두 신경·지방조직·면역세포 축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미주신경을 통한 부교감신경의 염증 조절 기능이 가장 중요한 조절 요소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국제적으로 연구가 활발한 신경면역 조절 및 미주신경 기반 치료 전략과도 방향성이 맞닿아 있다.
연구팀은 특정 생물학적 축을 하나씩 제거하는 분석도 진행했다. 그 결과 전체 모델에서 나타난 다중 안정성과 이력현상이 개별 축 자체보다는 서로 다른 생물학적 축 사이의 결합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학적 모델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제 환자 유전자 데이터도 분석했다. 류마티스관절염, 루푸스, 강직척추염, 피부근염, 전신경화증 등 5개 류마티스질환의 공개 유전자 데이터 6건을 분석한 결과, 특히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의 혈액과 활막 조직에서 모델이 예측한 유전자 패턴이 다른 유전자보다 뚜렷하게 이상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치료 불응성을 특정 유전자나 면역세포 하나의 문제로 보기보다 여러 생물학적 축이 얽힌 시스템의 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정성수 교수는 "이번 연구는 난치성 류마티스질환 환자들의 문제를 개별 유전자나 세포 수준을 넘어 시스템 전체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 첫 연구"라며 "난치성 류마티스질환에서 단일 경로 표적 치료가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와 여러 축을 동시에 조절하는 치료 전략의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치료 불응성 류마티스관절염 환자를 선별해 장기적인 임상·다중오믹스 데이터를 통해 모델을 검증한다면, 환자마다 어떤 생물학적 축이 치료 불응성을 주도하는지 파악하고 여러 축을 함께 고려하는 정밀 맞춤형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Multistable attractor dynamics as a systems level hypothesis for treatment refractoriness in rheumatic disease'라는 제목으로 영국 스프링거 네이처가 발행하는 npj Systems Biology and Applications에 게재됐다.
Copyright @보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