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증상이 겹쳐 진단이 쉽지 않은 화병을 보다 체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검사도구의 임상적 활용 가능성이 확인됐다. 화병 환자 10명 가운데 7명을 선별할 수 있는 기준점수와 함께 다른 정신질환과 감별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단계적 평가 기준도 제시됐다.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종우 교수 연구팀은 실제 화병 관련 증상을 호소하는 성인 182명을 대상으로 '화병종합검사(Hwabyung Comprehensive Test, HCT)'의 선별 및 감별 성능을 분석한 결과, 화병 가능성을 평가하는 보조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Diagnostics'에 게재됐다.
화병은 억울함과 분노를 장기간 억누르는 과정에서 분노와 원망 등의 정서적 증상과 가슴 답답함, 열감 등 신체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과 증상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화병의 특징을 구분해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병종합검사는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개발된 평가도구로, 가슴 답답함과 열감 등 신체 증상 6문항과 원망·분노 등 정서 증상 7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기존에는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화병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선별할 수 있는지, 또 다른 정신질환과 구분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임상적 검증이 충분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2025년 2월부터 6월까지 서울 소재 대학병원을 방문한 성인 가운데 분노와 억울함, 가슴 답답함, 열감 등 화병 관련 증상을 호소한 182명을 대상으로 전향적 연구를 진행했다. 참여자들은 전문 의료진의 구조화된 임상 면담을 거쳐 화병군 100명과 비화병군 82명으로 분류됐다.
비화병군에는 우울장애,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면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 36명과 정신질환 진단을 받지 않은 46명이 포함됐다. 연구팀은 화병종합검사 점수와 임상 면담을 통한 진단 결과를 비교해 화병을 선별할 수 있는 기준점수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화병 환자는 다른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나 정신질환 진단이 없는 사람보다 화병종합검사 점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 52점인 화병종합검사에서 연구팀은 33.5점을 화병 가능성을 선별하는 기준점수로 제시했다.
이 기준을 적용한 결과 화병군 100명 가운데 71명(71.0%)이 화병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됐다. 반면 비화병군 82명 중에서는 68명(82.9%)이 화병이 아닌 것으로 정확하게 구분됐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화병종합검사가 진료 현장에서 화병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확인하는 선별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병의 특징적인 신체 증상에 대한 평가도 다른 정신질환과의 감별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슴 답답함과 열감 등을 평가하는 신체 증상 점수는 총 24점 가운데 16.5점을 기준으로 적용했을 때 다른 정신질환 환자의 83.3%를 화병이 아닌 것으로 구분했다.
이에 연구팀은 먼저 화병종합검사 총점 33.5점을 활용해 화병 가능성을 선별한 뒤, 신체 증상 점수 16.5점을 추가로 확인하는 단계적 평가 방식을 제안했다.
다만 연구팀은 화병종합검사가 화병을 확진하는 검사도구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검사 결과는 전문 의료진의 임상 면담과 판단을 보조하는 참고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증상이 없는 일반인과 화병 환자를 비교한 것이 아니라, 화병과 증상이 겹칠 수 있는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면장애 환자까지 포함해 검사도구의 임상적 활용 가능성을 평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화병의 정서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을 함께 평가하고, 전체 점수와 신체 증상 점수를 목적에 따라 단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다만 단일 의료기관에서 연구가 진행됐고 연구 참여자 대부분이 중년 여성으로 구성됐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향후 다양한 연령과 성별, 의료기관을 포함한 다기관 연구를 통해 검사 기준의 임상적 적용 가능성을 추가로 검증할 계획이다.
김종우 교수는 "화병종합검사는 화병의 정서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공동 개발한 평가 도구"라며 "이번 연구는 전체 점수로 화병 가능성을 먼저 확인하고 신체 증상 점수를 추가로 활용하는 단계적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화병종합검사는 화병을 단독으로 확진하는 검사가 아니라 임상 면담과 진단을 돕는 보조 도구"라며 "앞으로 다양한 연령과 성별, 의료기관을 포함한 후속 연구를 통해 임상 활용 가능성을 높여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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