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혈관만의 병 아냐"…정맥부전, 만성통증 진료 새 변수로 부상
인터뷰/ 대한정맥통증학회 노환규 회장
"통증 원인에 정맥질환 포함해 재평가해야… 과잉·과소진료 모두 바로잡을 때"
원인을 찾지 못한 채 반복되는 만성통증 환자 가운데 정맥의 혈류 이상이 통증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혈관이 눈에 띄게 튀어나오지 않거나 기존 정맥질환 진단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맥성 통증 가능성이 간과되는 한편, 반대로 고가의 비급여 시술이 과도하게 이뤄지는 등 하지정맥류 진료 현장의 양극화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한정맥통증학회 노환규 회장(하트웰의원 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맥부전과 만성통증의 연관성을 설명하며, 환자의 통증 양상과 혈관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진료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그동안 신경·근골격계 질환으로 진단받고 치료했지만 호전되지 않는 만성통증 환자에서 정맥질환이 원인인 경우를 임상에서 상당수 경험하고 있다"며 "통증을 평가할 때 정맥이라는 요소를 하나의 중요한 감별 진단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맥부전은 정맥 내 판막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혈액이 역류하면서 정맥에 혈액이 고이는 질환이다. 정맥 울혈이 지속되면 국소적인 미세순환 장애와 염증, 조직 내 산소 부족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통증이나 열감, 무거움 등의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 회장은 이러한 정맥성 통증이 단순히 종아리나 발목 부위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허리와 엉치, 골반 주변의 통증이나 다리 저림·화끈거림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환자에 따라서는 기존의 정형외과적 질환이나 신경질환으로 오인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맥질환은 전통적으로 혈관이 얼마나 튀어나왔는지, 혈관의 형태가 어떤지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그러다 보니 실제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과 정맥의 기능적 이상 사이의 연관성이 충분히 평가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정맥통증학회는 이러한 임상적 문제의식에서 출범했다. 2020년 창립 당시 별도의 대규모 홍보 없이 진행한 오프라인 학술행사에 303명이 참여했으며, 이 가운데 99명이 정형외과 전문의였다는 게 노 회장의 설명이다. 현재 학회 회원은 2400여명으로 늘었다.
노 회장은 이를 두고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에서 치료해도 호전되지 않는 만성통증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정맥질환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관심을 갖는 의료진이 많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혈관 튀어나오지 않았다고 정맥질환 없는 것 아니다"
특히 문제로 꼽은 것은 정맥질환의 중증도를 외형이나 특정 초음파 수치만으로 판단하는 접근이다. 하지정맥류를 평가할 때 활용되는 CEAP 분류나 정맥 직경, 역류 시간 등의 기준이 실제 환자의 증상과 치료 필요성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노 회장은 "겉으로 혈관이 보이지 않는 환자라고 해서 정맥 기능에 문제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반대로 일정한 수치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혈관을 치료 대상으로 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는 혈관의 형태뿐 아니라 실제 통증의 양상과 발생 위치, 움직임이나 자세에 따른 변화, 초음파 검사에서 확인되는 혈류 이상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정맥질환 진료에서 숫자와 외형은 중요한 참고자료지만 그것 자체가 진단과 치료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며 "환자 개개인의 임상 증상과 혈관 상태를 함께 판단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가 비급여 시술 논란도…"과잉진료 역시 경계해야"
정맥질환 진료의 또 다른 문제로는 의료기관에 따라 비급여 치료비가 크게 차이 나는 현실을 꼽았다.
레이저·고주파·베나실 등 다양한 치료법이 활용되면서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에도 큰 차이가 발생하고 있으며,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범위와 실제 시행되는 치료 범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정맥질환 치료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필요한 혈관만 선택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원칙이 돼야 한다"며 "실손보험 등을 이유로 필요 이상의 혈관에 고가 시술을 시행하거나 입원·마취 등을 확대하는 행위는 의료계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맥부전 진료에서 과소진료와 과잉진료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혈관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맥질환 가능성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정맥 역류가 확인됐다는 이유만으로 광범위한 시술을 시행하는 것도 환자에게 불필요한 부담과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맥학회와의 갈등보다 '환자 중심 기준' 마련이 우선
노 회장은 정맥통증학회와 기존 대한정맥학회 사이에 그동안 학문적·정책적 견해 차이가 있었던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맥성 통증의 진단과 치료 범위, 하지정맥류의 치료 기준 등을 놓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회장은 이제는 학회 간 갈등을 넘어 환자 중심의 합리적인 진료 기준을 마련하는 데 의료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 학회의 주장이 옳으냐를 놓고 대립하는 것보다 실제 환자에게 어떤 진료가 필요한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대한정맥학회와 정맥통증학회가 서로 다른 관점을 인정하면서 근거를 놓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하지정맥류의 입원 치료 필요성을 둘러싼 법적 판단 이후 보험업계에서 이를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데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노 회장은 "특정 의료기관의 부적절한 진료 사례와 정상적인 정맥질환 치료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며 "개별 사례에 대한 판단과 전체 질환의 치료 필요성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형 정맥질환 진료 가이드라인 필요"
노 회장은 향후 정맥질환 진료가 외형과 획일적인 수치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해 관련 학회들이 공동으로 근거를 축적하고, 국내 환자 특성에 맞는 진료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제안이다.
노 회장은 "정맥부전이라는 질환을 지나치게 확대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기존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자의 증상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며 "불필요한 치료는 줄이고 실제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적절한 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만성통증 환자가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면서도 원인을 찾지 못하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서는 통증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를 넓힐 필요가 있다"며 "정맥질환 역시 만성통증의 감별 진단 가운데 하나로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의료환경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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