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상속공제서 빠진 병원계…"소아·분만 필수의료 승계 막는다"
병원장협의회·분만병의원협회·소아청소년병원협회 공동 기자회견 개최
"소아·분만은 신규 진입 사실상 없어…개별 심사·강화된 사후관리로 제도 보완해야"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에서 병원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병원계가 제도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신규 의료기관 진입이 사실상 끊긴 소아청소년과와 분만 분야의 경우 병원의 세대 간 승계가 곧 지역 필수의료의 지속 여부와 직결되는 만큼, 일률적인 업종 배제보다 개별 심사를 통해 공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병원장협의회와 대한분만병의원협회,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는 19일 의협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병원업을 포함해 줄 것을 요구했다.
특히 이들 단체는 소아청소년과와 분만 분야는 저출산과 낮은 수익성, 높은 의료분쟁 부담, 야간·휴일 진료 등으로 신규 진입이 사실상 중단된 만큼 기존 의료기관의 세대 승계가 지역 의료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8월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과 8월 4일 입법예고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을 한국표준산업분류 세세분류 727개로 구체화하고, 병원과 약국 등을 대상에서 제외했다. 현행 제도에서는 의료법에 따른 의료기관 운영사업이 가업상속공제 대상에 포함돼 있었던 만큼, 이번 개정안은 병원업을 명확하게 배제하는 내용이라는 게 병원계의 설명이다.
이상운 대한병원장협의회장은 이날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취지를 살펴보면 오히려 병원이 가장 부합하는 업종이라고 생각한다"며 "상속세 부담으로 가업의 지속성이 무너지면 결국 일자리가 사라지고 해당 분야의 경제활동과 국가 세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가 가업상속공제"라고 말했다.
이어 "병원은 단순히 건물이나 자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술과 진료 경험, 경영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 이어가는 구조"라며 "상식적으로도 병원을 주차장이나 단순 자산 보유 업종과 같은 기준으로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업상속공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기업의 원활한 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상속 이후에도 일정 기간 가업을 유지하고 고용 및 사업용 자산 등을 관리해야 하는 사후관리 요건이 적용된다.
병원 역시 승계 과정에서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개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의 경우 후계자가 의료인 자격을 갖춰야 하며, 상속 전부터 경영과 진료에 참여하는 등 실질적인 가업 승계를 준비해야 한다.
상속 이후에도 고용과 병원의 주요 기능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일반적인 자산 상속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 병원계의 주장이다.
이 회장은 "개인 병원의 경우 가업을 이어갈 2세가 미리 경영과 진료에 참여해야 하고, 상속 이후에도 일정 기간 직원과 병원의 경영 활동을 유지해야 한다"며 "중간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가업상속공제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당히 엄격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병원계는 또 높은 상속세 부담이 개인 병원의 승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병원은 토지와 건물, 의료장비 등 비유동자산 비중이 높은 반면 이를 단기간에 현금화하기 어렵다.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병원을 매각할 경우 지역에서 동일한 의료기능을 유지할 후속 운영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병원 건물을 급하게 매각해야 한다면 제값을 받기 어려울 수 있고, 결국 병원의 지속적인 운영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가업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아·분만은 신규 진입 없어…승계 끊기면 지역 의료도 사라져"
병원계가 특히 문제를 제기하는 분야는 소아청소년과와 분만 의료기관이다.
신봉식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장은 "이번 개편의 취지는 이해한다"며 "부동산 임대업이나 단순 유통업처럼 실질적인 가업 없이 자산만 넘기는 통로를 막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그 기준에 소아청소년과 병원과 분만 의료기관까지 함께 포함됐다는 것"이라며 "이 두 분야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의료 공급이 가장 빠르게 줄고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소아청소년과와 분만 분야는 저출산으로 인한 환자 감소와 낮은 수익성, 높은 의료분쟁 위험, 야간·휴일·24시간 진료 부담 등이 겹치면서 신규 의료기관의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신 회장은 "일반적인 업종은 하나의 사업체가 문을 닫더라도 다른 사업체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지만 소아와 분만은 그렇지 않다"며 "현재 운영되고 있는 기관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 공급을 유지하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라고 밝혔다.
이와함께 전국 소아아동병원과 중소병원의 상당수가 개인 개설 형태인 만큼 개인 병원의 승계가 세제상 막힐 경우 지역 의료기관의 자연 감소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 회장은 "소아와 분만은 더 이상 새로 생기지 않는 진료 영역"이라며 "승계 경로까지 차단된다면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지역 소아·분만 의료기관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필수의료 병원 승계는 의료정책의 연속성 문제"
병원계는 병원을 가업상속공제 대상에서 일률적으로 제외할 것이 아니라 가업상속공제심사위원회 등을 통한 개별 심사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병원의 경우 △승계 후 장기간 계속 경영 △의료인력을 포함한 고용 유지 △병상·입원·분만·소아·응급 등 핵심 의료기능 유지 △실제 진료에 사용되는 사업용 자산 중심의 공제 △매각·폐업 또는 의료기능의 현저한 축소 시 공제세액 추징 등 강화된 사후관리 조건을 적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신 회장은 "조세회피를 막아야 한다는 정부의 취지에는 동의한다"며 "그러나 업종 전체를 배제하는 방식보다 엄격한 개별 심사와 강화된 사후관리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병원계는 의료기관의 특성상 일반 기업과 달리 편법적인 자산 이전이나 자유로운 매각을 통한 상속이 쉽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의료법상 의료기관 개설 주체가 제한돼 있고, 개인 의료기관을 일반적인 영리기업처럼 지분을 나눠 승계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장비와 특수설비 등은 다른 용도로 쉽게 전환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자산 이전을 통한 조세회피 가능성도 낮다는 설명이다.
병원계는 이번 개정안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필수의료 강화 정책과도 배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을 지정해 지원하면서 정작 해당 의료기관의 세대 승계를 가로막는다면 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가업상속공제는 부의 대물림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한 세대가 축적한 전문기술과 노하우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기 위한 제도"라며 "소아와 분만은 기술과 인력이 끊기면 단기간에 다시 세울 수 없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어 "시행 이후 문제가 발생해 제도를 되돌리려 해도 이미 문을 닫은 병원과 이 길을 선택하지 않기로 한 다음 세대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는 없다"며 정부와 국회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에 이들 단체는 앞으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및 보건복지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병원업의 가업상속공제 대상 포함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제도 개선을 요청할 계획이다.
또 오는 20일까지인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의견 제출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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