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판막질환 산모 출산 도운 30년 기록 발표

산모·태아 위험 높은 경우 밝혀 과학적 치료 근거 마련

심장 판막질환을 가진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결심하는 데는 상상이 어려울 정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임신을 하면 태아에게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엄마의 몸은 혈액량이 늘고, 심박수가 빨라지는 등 평소보다 심장에 더 큰 부담이 가해지는데, 판막질환이 있으면 이를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신 그 자체로 태아는 물론 산모 본인도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어 의료진이나 가족 누구도 쉽사리 판막질환자에게 임신을 권유하기 어렵고, 환자 역시 임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서울병원 박성지 이미징센터장(순환기내과 교수)·오수영 모아집중치료센터장(산부인과 교수),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신혜영 교수 연구팀이 지난 30년 동안 판막질환 환자의 출산을 도운 기록을 발표했다. 논문은 대한의학회지(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JKMS) 최근호에 실렸다.

우리나라에서 심장판막질환 산모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가 드문 가운데 이번 연구는 30년간 축적된 국내 최대 규모의 임상 코호트 분석으로 나온 값진 성과다. 어렵고 위험한 심장판막질환을 가지고 있음에도 '엄마'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여성들의 소망을 존중하며, 산모와 태아 두 생명을 함께 지키기 위해 의료진이 임신 전 상담부터 임신과 분만의 전 과정까지 신중하고 세심하게 동행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연구팀은 "판막질환 산모의 임신과 출산이 그 자체로 도전인 것은 사실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면서 "삼성서울병원의 치료 경험이 더 많은 판막질환 산모의 출산을 돕는 데 쓰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논문은 1994년 12월부터 2023년 6월까지 판막질환 산모 138명과 의료진의 사투를 숫자로 옮겼다. 이 기간 산모의 나이는 29세에서 35세 사이로, 중앙값은 32세였다. 판막질환을 중증도로 나누었을 때 경도가 46명(33.3%), 중등도가 67명(46.8%), 중증이 25명(18.1%)로 집계됐다.

논문에 따르면 이 기간 삼성서울병원이 치료한 판막질환 산모의 사망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유산 또는 사산의 경우도 5건(3.6%)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임신 전 상담과 위험도 평가, 임신 후기 집중 모니터링, 분만 시점에 대한 선제적 계획이 실제 예후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은 2010년 무렵 인공심장판막 수술을 하고 승모판막 삼첨판막 역류증으로 인하여 심장이 커져 생명이 위험했던 산모의 출산을 도우면서 산부인과, 순환기내과, 심장외과 등이 모인 다학제팀을 꾸리고 본격적으로 심장질환 환자의 임신과 출산을 지원해왔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2025년 전국 단위의 최중증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 치료 및 다학제 진료를 제공하는 최종 전원 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는 중증모자의료센터로 지정된 바 있다

연구팀은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확보하기 위한 의학적 판단 근거도 함께 제시했다. 판막질환 산모와 태아의 예후는 판막질환의 중증도에 비례하여 나빠지는 것이 확인됐는데, 산모 합병증은 대부분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이었다.

다행히 합병증 발생은 주로 임신 후기에 해당하는 3분기 말(중앙 재태연령 39.8주)에 나타났고, 분만 역시 38.7주경(중앙값)에 이뤄져 태아가 충분히 자랄 수 있을 만큼 산모들도 잘 견뎌냈다.

실제로 37주 이전 출생한 미숙아는 18명(13%) 수준이었고, 28주 이전 초극소 미숙아는 2명(1.4%)에 그쳤다. 덕분에 출생아 중 15명(11.3%)만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 추가로 치료가 필요했다.

산모와 태아의 예후 예측 역시 기존 해부학적 중증도만으로는 위험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도 함께 밝혔다.

대신 연구팀은 임신 초기부터 걷기나 계단 오르기 같은 일상적인 활동만으로도 숨이 차거나 쉽게 피로해지는 등 활동 능력이 저하된 상태(NYHA class 2 이상)와 임신 전 급성 심부전으로 입원한 병력, 중등도 이상의 판막질환을 함께 고려해야 산모의 예후를 보다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NYHA는 뉴욕심장협회에서 심장기능을 평가하는 도구로 총 4단계로 이뤄져 있다. 1단계는 증상이 없는 상태, 2단계부터는 활동시 심장에 부담이 되어 숨이 차거나 두근거림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단계다.

신생아의 경우에도 산모의 임신 초기 기능상태 저하(NYHA class 2 이상), 임신 중 심부전 입원이 중요한 예측인자여서 산모가 실제로 임신을 견딜 수 있는 기능적·혈역학적 상태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수영 교수는 "심장질환 산모의 안전한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는 산과적 관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환자의 기능 상태와 심부전 병력을 반영한 정밀한 위험 평가, 그리고 순환기내과와 산부인과가 함께하는 다학제 협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성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삼성서울병원이 30년 동안 축적해 온 심장-산과 협진 경험을 데이터로 입증한 결과다. 판막질환 산모의 위험도는 단순한 해부학적 중증도보다 실제 기능 상태와 심부전 병력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앞으로 한국형 위험 예측 모델과 맞춤형 관리 전략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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