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물질 발굴·기술 수출 넘어 '완주 역량'이 관건
[2026년 창간 60주년 기획특집/ 보건산업 60년, 미래를 가다] K-신약 R&D 현황과 과제
ADC·RNA 치료제·재생 의료 등 첨단 모달리티로 체질 개선 본격화
신약개발 난제 '죽음의 계곡' 극복… "기술 충분" 산·학·정 협력 필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빅파마의 후보물질을 개량하던 후발자에서 새로운 기전을 규명하고 시장을 창출하는 '선도자(First-mover)'로의 구조적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무게 중심은 이미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신약 개발로 이동하는 추세다.
이러한 체질 개선은 R&D 방향성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국내 기업과 연구진은 항체-약물 접합체(ADC), 표적 단백질 분해(TPD), RNA 치료제, 재생의료 등 첨단 모달리티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독자적인 링커 및 페이로드 기술을 앞세운 국내 바이오텍들은 글로벌 빅파마와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며 K-바이오의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R&D 전략 역시 고도화되고 있다. 과거 전임상이나 초기 임상 단계에서 권리를 이전하던 조기 기술수출 모델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임상 2·3상까지 자체 개발을 진행하거나 상업화 이후 수익을 공유하는 구조로 진화했다. 차세대 CDK7 저해제, P-CAB 계열 신약 등은 국내 시장의 성공을 발판 삼아 미국, 중국, 인도 등 글로벌 무대 진입을 본격화하며 '완주형 개발 모델'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질적 도약에도 불구하고 K-신약 R&의 앞날에는 구조적 난제가 버티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매출액의 10~20% 이상을 R&D에 투입하며 공격적으로 임하고 있으나, 후기 임상 단계로 진입할수록 자본 부담과 리스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임상 1상에서 3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낮은 성공 확률이 맞물리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은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투자 심리 위축과 바이오 투자 공백기인 '바이오 캐즘' 현상이 장기화되는 점도 기업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기전의 혁신성 면에서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으나, 글로벌 임상 3상과 최종 허가까지 이르는 '완주 경험'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특히 항암제 영역에서는 병용요법 설계 역량, 글로벌 임상 운영 노하우, 자금 조달 능력이 향후 생존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단순 기술수출 중심 모델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독자적 매출을 창출하는 '상업화 연계형 R&D 전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 생태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협력 기반의 혁신 구조가 필수적이다. 기초과학을 보유한 학계, 물질 개발 역량을 갖춘 바이오텍, 자본력과 임상 노하우를 확보한 제약사가 유기적으로 톱니바퀴를 맞물리는 '고도화된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이 요구된다.
아울러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규제 대응 역량 확보도 당면 과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 기준에 부합하는 비임상·임상 데이터 확보,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임상 설계, 객관적 지표 기반의 평가체계 구축이 필수 인프라로 손꼽힌다.
실제 치료 환경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환자 중심 접근법'도 새로운 표준으로 부각되고 있다. 약효 개선을 넘어 복약 순응도를 극대화하는 제형 변경, 초고령 환자를 고려한 용량 세분화, 디지털 헬스 기술을 접목한 복약 관리 등은 임상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이는 동시에 상업적 가치를 제고하는 핵심 요소다.
전문가들은 K-신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실질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산업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정부, 학계, 산업계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삼각 편대'가 완성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R&D 지원은 단기 성과 도출 방식에서 탈피해 장기적인 원천기술 확보 기조로 전환되어야 하며, 임상 현장의 데이터가 연구개발로 신속하게 환류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대규모 후기 임상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메가 펀드 조성과 함께, 주요국과의 상호인정협정(MRA) 확대를 골자로 하는 규제 외교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국내 바이오의약품 연구소 관계자는 "현재 한국의 신약 R&D는 기술적 기반 측면에서 글로벌 톱티어 수준에 육박했다"며 "이제는 혁신 물질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표준 치료(Standard of Care)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밀하고 신뢰도 높은 임상 데이터를 축적해 증명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으로서의 잠재력을 충분히 증명해 보인만큼 남은 과제는 축적된 기술적 자산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독자적인 오리지널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고, 글로벌 필수 의약품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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