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이 곧 치료… 미래의료, 질병 전(前) 관리하는 시대로"
[창간 60주년 기획특집/ 보건산업 60년, 미래를 가다]
기고/ 의료 패러다임 전환-오한진 대한생활습관병학회 회장·의학박사
'예방 중심 의료' 만성질환·의료비 증가 대응 위한 새로운 해법
'웨어러블 기기'로 의료가 병원 안에서 일상 속 건강관리로 연결
'AI·빅데이터 기술' 개인 위험도 특성에 맞춘 '맞춤형 예방' 가능
우리는 오랫동안 병이 생긴 뒤 병원을 찾고, 의사는 이를 진단해 치료하는 방식의 의료에 익숙해져 왔다. 실제로 현대의학은 눈부신 치료 성과를 이뤄 왔고,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해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기존의 치료 중심 의료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만성질환의 증가, 의료비 부담의 가파른 상승은 의료의 방향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는 질병이 생긴 뒤 대응하는 의료가 아니라, 질병이 생기기 전에 위험을 예측하고 차단하는 예방 중심 의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질환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감염병처럼 비교적 단기간 치료가 가능한 질환보다 암, 당뇨병, 고혈압, 심뇌혈관질환과 같은 만성질환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질환은 일단 발병하면 장기간 관리가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완치보다 조절과 관리가 더 중요한 목표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환자 개인의 고통뿐 아니라 가족의 돌봄 부담, 국가 의료재정의 압박까지 함께 커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날 의료의 핵심은 단순히 치료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질병의 시작점 이전으로 개입 시점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학기술 발전 예방 중심 의료 현실화
예방 중심 의료로의 전환은 이미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유전체 분석 기술은 과거에 비해 훨씬 빠르고 저렴해졌고, 개인의 유전적 취약성을 미리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특정 질환의 위험군을 조기에 선별하고, 보다 적극적인 예방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여기에 스마트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는 심박수, 수면, 활동량, 혈당 등 다양한 생체 정보를 실시간으로 기록하며 이상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가 병원 안의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 속 건강관리와 연결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은 예방의학의 가능성을 한층 더 넓히고 있다. 건강검진 결과, 가족력, 생활습관, 생체 데이터, 복약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개인별 질병 발생 위험을 보다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건강관리를 권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각자의 위험도와 특성에 맞춘 맞춤형 예방이 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개인맞춤형 정밀 예방의학으로 발전
앞으로의 의료는 평균적인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획일적 접근이 아니라, 개인의 건강 특성과 생활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정밀 예방의학의 방향으로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다.
예방의 가치가 중요한 이유는 단지 의료비 절감 때문만은 아니다. 예방은 질병의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지키며,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접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뇨병 전단계에서 생활습관을 개선하면 실제 당뇨병으로 진행되는 것을 늦추거나 막을 수 있고, 이는 심혈관질환이나 신장질환 같은 중증 합병증 예방으로도 이어진다.
결국 예방의학은 병을 덜 앓게 하는 의학이자, 환자가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예방 의료의 유효성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들을 통해 명백히 입증되고 있다. 의학 저널 The Lancet에 게재된 세계 질병 부담 연구(Global Burden of Disease Study)에 따르면, 전 세계 조기 사망과 장애의 40% 이상이 흡연, 고혈압, 비만, 식습관 등 수정 가능한 위험 요인에서 비롯된다.
이는 질병이 발생한 후 치료하는 것보다 위험 요인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예방 중심의 접근이 인류 건강 증진에 훨씬 효과적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더불어 국제 학술지 Nature Medicine에 발표된 정밀 예방 의학 연구 보고서들은 유전체 데이터와 AI 기반의 예측 모델을 결합했을 때 만성질환의 발병률을 최대 50%까지 낮출 수 있다는 실증적 데이터를 제시하며 예방 의료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예방 중심 의학은 선택 아닌 필수
이제 예방 중심 의료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치료에만 의존하는 의료 시스템은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확산 속에서 지속 가능성을 잃기 쉽다. 반면 예방 중심 의료는 개인에게는 건강한 삶을, 사회에는 효율적인 의료자원 활용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의료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 지역사회의 건강관리 체계, 학교와 직장의 건강교육,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실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건강은 병이 생긴 뒤 회복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지켜내야 할 삶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의료의 미래는 분명하다. 앞으로 경쟁력 있는 사회는 더 뛰어난 치료기술만을 가진 사회가 아니라, 질병을 미리 예측하고 예방하며 국민의 건강수명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치료 중심의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질병이 찾아온 뒤 싸우는 의료에서, 질병이 오기 전에 막아내는 의료로.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선택해야 할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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