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학회 80주년 "격동의 시대 넘어 국민건강의 버팀목으로"

전공의 수련 정상화·전문의 시험 등 의료계 현안 논의
복지부 정책 '성분명 처방·검체위수탁 개편' 우려 표명
국내 임상현실 반영한 교과서 발간해 진료 기준 정립

1945년 해방의 혼란기 속에서 첫발을 내디딘 대한내과학회가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의정 사태와 필수의료 위기 등 의료계를 둘러싼 격변의 한가운데서 내과학회는 '의료의 품격'과 '전문의 수련의 충실성'을 다시금 강조하며 한국 의료의 근본을 되짚었다.

대한내과학회는 지난 25일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창립 80주년 기념식을 갖고 최근 내과 전반의 전공의 지원 감소, 전문의 배출 문제 등을 둘러싼 주요 현안을 언급했다. 

이날 박중원 대한내과학회 이사장(세브란스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은 "1945년 해방 직후, 혼란의 시기에 태어난 내과학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사회 변동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으며 한국 의료 발전의 중심에서 역할을 해왔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의정 사태의 본질은 필수의료 인력 부족에서 시작됐다"며 "비수도권 병원 붕괴와 필수진료과의 공백은 의료체계 전체를 흔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내과는 전공의 지원 감소로 인한 인력 공백이 가장 심각한 과 중 하나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검체검사 위수탁 분리청구 ▲성분명 처방 제도 등은 의료현장의 부담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박 이사장은 "검체검사 분리청구나 성분명 처방은 이미 타격을 받고 있는 필수과와 지방 병원에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며 깊은 우려를 전했다.

'한국형 내과학 교과서' 10권 발간… "국내 환자 맞춤형 진료 지침"

학회는 이날 창립 80주년의 핵심 성과로 총 10권, 4700여쪽에 달하는 '대한내과학회 교과서' 출간을 공식 발표했다.

조명석 기획이사(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의정 사태로 교수들이 당직과 진료에 매달려 집필이 지연됐지만, 결국 한국 실정에 맞는 교과서를 완성했다"며 "외국 교재가 다루지 못한 국내 환자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번 교과서에는 ▲한국의 유병률 및 질환별 발생률 ▲식습관과 생활환경에 따른 임상양상 차이 ▲국내 허가 의약품 중심 처방 체계 등 실질적 진료 정보가 담겼다. 예를 들어 염증성 장질환의 경우 서구와 달리 국내 크론병 환자의 50% 이상이 항문 주위 염증을 동반하는 등 한국형 임상 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학회는 이를 통해 내과 전공의 및 전문의 시험, 임상현장 진료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체계를 확립하겠다는 계획이다.

전공의 전문의 시험 특례 논란 "비상한 시국의 비상한 결정"

최근 의학계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전문의 시험 특례(조건부 합격제)'에 대해 내과학회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박 이사장은 "내과는 1차 투표에서 반대가 더 많을 정도로 내부 논의가 팽팽했다"며 "수련의 질이 담보되지 않은 채 시험을 먼저 보는 방식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현장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비상 시국의 비상 결정'으로, 한시적으로 수용했다는 설명이다.

박 이사장은 "이번 결정은 단 1년만 적용되며, 2026년 수련 상태를 면밀히 평가해 2027년 제도 방향을 다시 정하겠다"고 덧붙였다.

강현재 차기 이사장(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도 "내과학회가 모든 전문학회를 대표하진 않지만, 자격을 제대로 갖춘 사람만이 전문의가 돼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없다"며 "국민이 불안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수련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정 갈등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정부가 추진 중인 검체검사 위수탁 분리청구와 성분명 처방제 논의가 의료계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중원 이사장은 "검체검사 분리청구제는 병·의원의 행정 부담과 비용 부담을 동시에 늘릴 수 있다"며 "특히 인력과 장비 여건이 열악한 지방 중소병원엔 직격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면 내과계가 주로 다루는 만성질환 환자들의 약물 순응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환자 중심 진료를 위해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I 시대 '국민 주치의' 비전 제시… 통합·전문화의 균형 지향

미래 비전과 관련해 내과학회는 '세대 간 소통과 협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

박 이사장은 "AI 시대에도 의학의 중심은 여전히 '인간'과 '질문'에 있다"며 "인공지능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한 의학적 판단력과 임상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학회는 향후 '국민 주치의 육성'과 '융합의학 인재 양성'을 양축으로 하는 미래전략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강현재 차기 이사장은 "내과학회는 앞으로도 국민건강과 학문적 정통성을 지키는 학회로 남겠다"며 "수련의 충실성과 의료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지금 학회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중원 이사장 역시 "지난 80년간 내과학회는 수많은 도전 속에서도 품격 있게 버텨왔다"며 "세대 간 협력의 전통이 이어지는 한, 어떤 위기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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