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서양은 기독교이고 중동은 회교가 보편화 돼 왔다. 동양에서는 불교가 융성해서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와 일본도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18세기 서세동점과 함께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대거 들어왔다. 기독교는 3.1 운동을 위시해 압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섰으며 교육사업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요즘 미국에서는 옛날의 영화는 거의 없고 신자가 많지 않은 교회도 쉽게 볼 수 있다. 오히려 일부 지식인들은 달라이 라마와 같은 지도자를 따라 불교를 배우고자 인도까지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조셉 니담 박사 생전에, 회의에서 그를 여러 번 만난 일이 있다. 조셉 니담은 중국과학사의 태두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생화학을 배운 그는 1937년부터 중국 역사연구에 헌신했다. 국민당 시절 주중 영국대사관 문화담당관으로 중국 과학사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서 케임브리지대학에 돌아왔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거주하는 중국인 루퀘이전(魯桂珍)을 통해 중국의 문명과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졌고 연구 조수였던 왕링(王玲)과 함께 방대한 중국 문명을 연구해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동양과학사를 집필했다. 애초에 20권을 쓰고자 했지만 18권을 끝으로 생을 마쳤다.
한번 조셉 니담이 만든 중국과학사 연구의 본산인 니담연구소를 찾아간 일이 있다. 그곳에는 중국관계 과학사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문헌도 거의 다 갖추고 있어 참으로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조셉 니담은 나와 만난 모임에서 종교와 평화에 대해 자주 얘기했다. 그는 유럽의 가장 큰 잘못으로 기독교를 빙자한 전쟁을 꼽았으며 십자군 원정이 서양사의 오점이라고 말했다.
회교도들은 교세 확장을 위해 무력으로 회교세력을 중동지방에서 퍼뜨렸다. 오직 불교만이 전쟁을 퍼뜨리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확실히 불교는 전쟁을 퍼뜨리는 데 관여한 일이 없다. 베트남전쟁에서도 월남 정부가 스님들을 탄압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나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돕는 역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도 조셉 니담과 뜻이 통한다. 앞으로의 세상은 전쟁이 없어져야 한다. 무기는 또 다른 전쟁을 막기 위한 차선의 방법이다.
이미 작고한 니담 박사를 생각하며 평화를 애호한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니담 박사가 말했듯 불교이념이 온 세계에 퍼져 나가기를 바란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니담 박사는 자신의 유언대로 화장된 후 니담연구소에 뿌려졌다고 한다. 특이하지만 우리도 한번은 생각해봐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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