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진 현장 외면한 수가 개편… 일차의료 붕괴 경고
건강검진학회, 검체 위·수탁 제도 개편 반발… "진찰료 보전없는 수가 인하 철회해야"
일반검진 건당 최대 7천원 손실 우려… 검진 관리료 현실화와 사후상담료 신설 촉구
대형병원 고가 VIP 검진 행태도 도마… 1~2년 밀린 검진비에 지연 이자 지급 요구도
국가건강검진 제도 개편이 오히려 일차의료의 검진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검진기관의 행정·인력 부담에 대한 보상은 외면한 채 검체검사 수가 인하와 분리 청구를 추진하면서 동네 의원들의 경영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반검진만으로도 건당 수천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검사 항목이 늘어날수록 적자 폭이 확대되는 것으로 분석되면서, 개원가에서는 국가검진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일차의료기관의 참여 기반이 무너지면 국민건강검진의 접근성과 사후관리 체계까지 약화될 수 있다며 정부에 제도 개편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한국건강검진학회(회장 조연희)는 1일 서울 소공동 더 그랜드 롯데에서 열린 제12회 추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을 비롯한 국가건강검진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날 학회가 가장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검체검사 수가 인하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다.
조연희 회장은 "검사비를 공단이 검사실에 직접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뿐 아니라 내년부터 검체 수가 인하까지 예고돼 있다"며 "공단 일반검진 검사 수가는 건강보험 급여 검사 수가와 연동되는 구조여서 검진기관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학회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손익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단순 일반검진 패키지만으로도 건당 약 3600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상지질혈증 검사를 포함하면 손실액은 약 7000원으로 늘어나며, B형·C형 간염 검사까지 추가될 경우 손실 규모는 더욱 커진다.
문제는 검체검사 비용만이 아니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수검자 문진과 채혈, 검체 보관 및 안정성 유지, 검사 결과 통보, 이상 소견에 대한 설명과 사후 상담까지 검진 전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투입되는 의료진과 직원의 인력, 시간, 행정 비용은 상당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조 회장은 "현재 검진 행정·상담료는 일반 초진 진찰료의 52.1%에 불과하다"며 "문진부터 채혈, 결과 통보, 사후 상담까지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를 외면한 채 수가만 낮추면 의원급 의료기관은 검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오태훈 총무부회장도 일차의료 검진 인프라의 붕괴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내과 전공의 기피 현상으로 향후 10~20년 뒤에는 내과 의사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며 "진찰료 보전 없이 검체 수가를 인하하는 것은 일차의료 검진 인프라를 무너뜨리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검진기관의 약 80%를 차지하는 내과 의원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국가검진을 계속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윤경한 총무이사 역시 검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급여성 업무 부담과 감정 노동을 보상 체계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검자에게 검사 필요성을 설명하고 결과에 따른 추가 진료를 안내하는 과정에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을 고려해 검진 관리료를 현실화하고 사후상담료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급종합병원의 검진 사업 운영 방식과 의료전달체계 왜곡 문제도 주요 현안으로 제기됐다. 학회는 중증환자 진료에 집중해야 할 대형병원이 공단 일반검진은 중단하면서 고가 비급여 검진과 VIP 회원제 사업은 유지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이태인 공보이사는 서울대병원 사례를 언급하며 "서울대병원은 중증환자 진료 집중을 이유로 2021년부터 공단 일반검진을 중단했지만, 연회비 최대 2600만 원대의 VIP 회원제와 고가 비급여 검진 사업은 유지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일부 대형병원이 공단 일반검진을 고가 비급여 검진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끼워팔기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반건강검진은 고혈압과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만성질환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지역사회와 밀착된 일차의료기관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상급종합병원은 검진에서 발견된 중증 유소견자의 정밀검사와 확진, 치료에 집중하도록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검진 이후의 사후관리 체계 역시 개선이 필요한 과제로 꼽혔다.
이석종 홍보·정보통신부회장은 대형 검진센터의 일회성 검사와 기계적인 판독만으로는 환자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40세 여성의 골밀도 검사 결과를 기계적으로 판독해 불필요한 불안을 유발하거나, 55세 고혈압 환자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안일하게 안내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환자의 평소 질환과 가족력을 잘 알고 있는 동네 의원에서 검진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사후관리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진과 진료가 단절되지 않도록 사후상담료를 신설하고 일차의료기관 중심의 연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암검진 등에서 발생하는 검진비 지급 지연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 의료기관은 지자체 예산 부족이나 공단의 행정 착오 등으로 검진을 완료하고도 비용을 1~2년씩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을 겪고 있다. 의료기관이 인건비와 검사비 등 사업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먼저 부담하고도 정작 대금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구조다.
이태인 공보이사는 "의료기관은 세금이나 과태료 납부가 조금만 늦어도 가산금과 연체료를 부담하지만, 지자체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검진비 지급을 1~2년씩 미루다가 원금만 지급한다"며 "지연 지급 기간에 대한 은행 이자라도 가산해 보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미래 검진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디지털 체험존도 처음 운영됐다.
체험존에서는 AI 기반 내시경 병변 검출과 영상판독 기술을 비롯해 무통 레이저 채혈기, 혈액 기반 알츠하이머 위험도 검사 등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소개됐다. 참가자들이 첨단 장비와 기술을 직접 경험하고 실제 검진 현장에 적용할 가능성을 살펴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조 회장은 "의원급 의료기관이 첨단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접하고 스타트업 기업은 검진 현장에 기술을 알릴 수 있도록 상생의 장을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일차의료기관의 검진 역량 강화와 국민 건강권 수호를 위해 정책 제안과 학술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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