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약 도입 초읽기…산부인과계 "안전망·법적 보호 필수"

산부인과 3개 단체, 정부의 9주 이내·단계적 도입 방향 공감
"표준진료지침·응급이송·24시간 상담체계 구축…진료선택권·배우자 동의는 법 정비해야"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을 둘러싼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산부인과계는 정부가 제시한 단계적 도입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처방·투약에 앞서 환자 안전을 위한 의료체계와 의료진을 보호할 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등 산부인과 3개 단체는 16일 정부가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보고한 인공임신중지 약물 단계적 도입 방안에 대해 공동 입장을 내고 이같이 밝혔다.

특히 임신중지약을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하는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5년 넘게 이어진 입법 공백을 행정지침만으로 해소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임신중지약 도입과 함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 의사의 진료선택권, 배우자 동의 요건, 의료인의 법적 보호 등 쟁점을 국회가 조속히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9주 이내·2년간 의료기관 내 처방…단계적 도입 공감"

정부가 제시한 방안은 임신중지약의 사용 범위를 제한하고, 초기에는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처방·조제를 관리하는 단계적 접근이 골자다.

3개 단체는 임신중지 의약품이 그동안 제도 밖에서 비공식적으로 유통돼 온 현실이 여성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국가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임신 9주 이내로 사용 범위를 한정하고, 도입 초기 2년간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도록 한 방안에 대해서는 환자 안전을 우선한 신중한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위해성관리계획(RMP)을 통해 실제 사용 과정에서 안전성을 확인한 뒤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방안과 의료계가 자율적으로 진료지침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점도 환영했다.

다만 제도 도입의 전제는 명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 안전과 의료인의 법적 보호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정지침만으로 임신중지약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약 복용 전 자궁외임신 배제…응급체계 갖춰야"

산부인과계가 가장 강조한 부분은 안전관리다. 임신중지약은 복용 전 정확한 임신 주수를 확인하고 자궁외임신 여부를 배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복용 이후에도 추적 관찰이 요구된다. 불완전유산이나 과다출혈 등 합병증이 발생할 경우 후속 수술적 처치와 응급의료기관 연계가 가능해야 한다.

3개 단체는 안전한 제도 정착을 위해 산부인과 전문 단체로서 6개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허가사항과 위해성관리계획을 바탕으로 적응증 확인, 자궁외임신 배제, 병용금기 판단, 투여 절차, 추적 관찰, 합병증 대응 등을 포함한 표준진료지침을 마련한다. 또 초음파를 통한 임신 주수 확인과 자궁외임신 배제 등 처방에 필요한 의료진의 역량을 표준화하고, 회원을 대상으로 교육·훈련을 진행할 계획이다.

개원가에서 실제 처방과 추적 관찰이 가능하도록 원내 처방·조제 절차도 마련한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은 정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한다.

합병증 발생에 대비한 안전망도 구축한다. 후속 수술적 처치와 응급이송이 가능한 의료기관 요건을 마련하고, 이에 상응하는 수가 보상 방안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정부와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약물 도입 이후에는 실제 사용 현황과 이상사례를 축적·분석해 제도 개선에 반영키로 했다.

특히 24시간 비대면 상담창구 구축도 추진할 계획이다. 약물 복용 이후 출혈이나 통증 등 증상이 발생했을 때 야간과 휴일에도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하면 의료기관 진료로 연계하는 체계를 마련한다, 

진료선택권·배우자 동의 등 "국회가 정리해야"

이들 단체는 제도 도입 과정에서 의료진의 법적 보호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개인의 신념에 따라 임신중지약 처방에 참여하지 않을 의사의 진료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처방을 받지 못한 여성이 필요한 진료를 지체 없이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의료기관으로 연계하는 절차를 법률에 명확히 담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배우자 동의 요건에 대해서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인공임신중절과 관련해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함께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3개 단체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와 여성의 자기결정권, 약물을 통한 초기 임신중지라는 새로운 진료 형태 등을 고려할 때 해당 규정에 대한 국회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료인의 법적 보호 역시 별도 과제로 꼽았다. 형법 개정이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신중지약 처방·투약에 참여하는 의료진이 형사적 불확실성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한 임신중지 관련 규율 명확화와 함께 임신중지 의약품의 허가·처방·조제·투약·부작용 보고 등에 대한 제도적 근거 마련을 요구했다.

아울러 불완전유산과 과다출혈에 대비한 후속 수술 및 응급이송 체계, 적정 수가 보상, 참여 의료진의 형사처벌 우려를 해소할 법적 보호 방안, 양심적 사유로 임신중지약 처방을 거부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보호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3개 단체는 법 개정이 임신중지약 도입을 지연시키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제도가 의료 현장에서 안전하게 작동하기 위한 전제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공동 협의 창구를 구성하고, 대한산부인과학회는 건강한여성재단 안전한 임신중절 윤리위원회를 통해 정부 및 관계기관과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여성의 건강과 안전, 현장 의료진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은 함께 가야 한다"며 "정부의 안전관리 중심 도입 방향에 공감하고 표준진료지침과 교육체계를 갖춰 안전한 도입과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