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체검사는 환자의 진단과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의료의 출발점이다. 혈액이나 소변 등에서 얻은 작은 신호를 통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 효과와 예후를 확인하며, 감염병 확산에도 대응한다. 겉으로는 진료의 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검사 결과 하나에는 체외진단의료기기와 시약, 전문인력, 정도관리, 정보시스템, 검체 운송과 보관 등 복합적인 기반이 작동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우리 사회가 확인했듯, 정확하고 신속한 검사는 단순한 비용 항목이 아니라 환자 안전과 의료체계의 효율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다.
최근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필수의료 보상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 수가 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검체검사 등 비용 대비 수익이 높은 검사 수가를 조정하고, 위·수탁 보상을 명확히 하며 질 관리도 강화한다. 정부는 검체검사의 비용 대비 수익이 평균 약 190%라는 분석을 바탕으로 올해 150%를 초과하는 항목의 수가를 150% 수준으로 조정하고, 2028년 추가 분석을 거쳐 균형 수가로 조정할 계획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저보상된 필수의료에 재원을 재배분하려는 정책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운영돼 온 보상과 청구 구조를 바로잡고 검사 질을 높이려는 시도 역시 필요하다. 다만 이번 개편이 검체검사 분야 전체를 하나의 '과보상 영역'으로 바라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검체검사는 항목별 검사 원리와 난이도, 장비와 시약의 원가, 검사량, 인력 투입, 품질관리 부담이 크게 다르다. 대량 자동화가 가능한 기본검사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자·유전검사, 희귀질환 검사, 신속한 결과가 요구되는 응급검사를 동일한 수익 구조로 판단하기 어렵다.
기관 규모와 지역, 검사 건수에 따라서도 비용 구조는 달라진다. 평균값을 근거로 일괄 조정하면 상대적으로 취약한 영역부터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 이는 검사 외주화와 시장 집중, 지역 간 검사 접근성 격차를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검체검사료만을 독립된 지출로 보는 접근에도 한계가 있다. 적시에 시행된 정확한 검사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 실패를 줄여,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입원, 수술, 약제 사용과 합병증 비용을 낮춘다. 예를 들어 감염 원인과 약제 내성을 신속히 확인하면 경험적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적절한 치료로 전환하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검사 자체의 단가만 낮추는 것만으로 재정 효율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검사 결과가 치료 과정에서 만들어내느 의료비 절감과 환자의 시간, 예후 개선을 함께 살펴야 한다. 수가 개편의 목표 역시 개별 검사 항목의 지출 축소가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검사가 적절한 시점에 제공되도록 하면서 전체 의료자원의 효율을 높이는 데 둬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행 수가체계가 검사에 사용되는 기술과 품질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체외진단기술은 검사시간 단축, 정확도 향상, 오염 위험 감소, 항생제 적정 사용, 불필요한 입원과 추가 검사 예방 등 다양한 임상적·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런 가치가 수가 산정 과정에서 충분히 평가되거나 보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검사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항목으로 묶이면 혁신기술을 도입한 의료기관은 추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기업 역시 연구개발과 국내 공급을 지속할 유인을 잃을 수 있다. 결국 혁신의 혜택이 환자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구조가 된다.
따라서 이번 개편은 단순한 수가 인하가 아니라 검체검사 보상체계의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검체검사별 실제 비용과 업무량, 위험도에 근거한 정교한 원가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장비와 시약 가격뿐 아니라 설치·유지보수, 교정과 정도관리, 전문인력, 검체 전처리와 운송, 검사정보시스템, 의료폐기물 처리 등 실제 검사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폭넓게 반영해야 한다. 또한 검사량과 기관 유형에 따른 비용 차이도 함께 분석해야 한다. 자료와 산정기준을 이해관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충분한 데이터 검증과 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 평균 수익률만으로 조정 폭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둘째, 검사 난이도와 위험도, 임상적 가치를 반영한 차등 보상체계가 필요하다. 자동화 정도와 관계없이 모든 검사를 동일한 잣대로 볼 것이 아니라 전문인력의 판단, 결과 해석의 복잡성, 오류 발생 시 환자에게 미치는 위험, 신속한 결과 제공의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폐쇄형 자동화 시스템처럼 오염 가능성을 낮추고 표준화된 결과를 제공하는 기술이나 환자의 치료 결정을 실질적으로 앞당기는 검사에는 그 편익에 상응하는 보상이 마련돼야 한다.
셋째, 혁신 체외진단기술의 가치를 적시에 평가하고 보상하는 별도의 경로가 필요하다. 신기술은 도입 초기 검사량이 적고 근거 축적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기존 행위와 단순 비교해 경제성을 판단하면 잠재적 가치가 큰 기술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한시적·조건부 보상, 실사용 근거 축적, 일정 기간 후 재평가를 연계하는 유연한 제도를 통해 환자 접근성과 건강보험 재정 책임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넷째, 개편 과정에 의료계, 진단검사기관, 체외진단기업, 환자와 전문가가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때 업계의 해법이 공동으로 가격 수준이나 할인 한도를 정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가격과 거래조건은 각 기업이 원가와 기술의 가치, 경쟁 상황에 따라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협회는 특정 가격을 제시하거나 회원사의 영업 판단에 관여하기보다, 공정거래 원칙을 준수하면서 객관적인 원가·가치 평가방법과 합리적인 구매·계약 기준을 정책 당국 및 의료계와 논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책 시행 전후로 검사 접근성, 질, 공급 안정성과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에만 변화를 요구할 수는 없다. 업계 역시 의료기관의 할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거나 단기적인 수주를 위해 가격을 반복적으로 낮추면서 출혈경쟁을 심화시켜 온 책임을 돌아봐야 한다. 그동안 '관행'으로 굳어온 이런 행태는 구매자에게 낮은 가격을 당연한 기준으로 인식하게 했고, 실제 공급원가와 기술·서비스의 가치가 거래가격에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기업의 수익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적정한 유지보수와 교육, 품질관리, 연구개발 여력을 약화시키고 결국 검사 품질과 안정적인 공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제 업계도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정확도, 임상적 유용성, 공급 안정성, 사후관리 등 제품과 서비스의 총가치로 경쟁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오로지 업계의 몫이다. 단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제품과 솔루션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시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화와 지역·필수의료 강화는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그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검체검사의 공공적 가치와 미래 경쟁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의미의 개편은 비용을 단순히 줄이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되 환자에게 필요한 정확한 검사와 가치 있는 혁신에는 제대로 보상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개편이 검체검사를 '줄여야 할 비용'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국민 건강과 의료 혁신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으로 재정립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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