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이하 공제조합)이 의료사고 관련 민·형사 소송에 대한 국제 비교 연구 중간 결과를 공개하며, 국내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외국에 비해 과도하다는 점을 데이터로 제시하고 사법부의 전향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공제조합은 지난 2월 발족한 '의료사법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서신초) 주도로 진행 중인 이번 연구를 통해 필수의료 붕괴 위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법 리스크 해소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공제조합은 지난 25일 의협회관에서 열린 제13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종희 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은 '의료사고 관련 민·형사 소송 등 조사·분석을 위한 연구'에 대한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 오는 7월 말 최종 보고서 발표에 앞서 진행된 이날 보고회는 현재까지 수집·분석된 각국의 데이터를 대의원들과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됐다.
독일·스위스도 의료인 처벌 드물어... "사법부 관점 중요"
연구진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스위스, 미국, 뉴질랜드 등 주요국의 의료 관련 법체계와 판례를 비교 분석했다.
중간보고에 따르면, 법령상 의료과오 책임이 한국보다 엄격한 독일에서조차 실제 의료인을 처벌하거나 배상을 명하는 판결은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과 유사한 의료 법체계를 가진 스위스 역시 의료행위에 있어 의료인의 재량권을 보다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이는 의료 분쟁의 사법적 해결에 있어 입법 내용 자체보다는, 사법부가 국가적 관점에서 의료의 지위와 역할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관련 법리를 어떻게 해석 및 적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유사한 의료 문화를 지닌 일본의 사례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대두된 사법 리스크로 인한 필수의료 기피 현상 해결에 있어 의료진의 책임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객관적 데이터로 사법부·국민 설득... 필수의료 살릴 계기"
이날 보고회에 참석한 서신초 의료사법제도개선위원장은 "기대만큼 좋은 중간 보고 결과가 나왔다"며 "이번 연구는 과거와 달리 국내 의료 관련 민사, 특히 형사 소송 통계자료를 확보해 분석한 점이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서 위원장은 국내 사법부가 의료인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환자 보호라는 미명하에 이뤄진 사법적 판단이 현재 필수의료 기피 등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나 국민들이 '외국은 의료인 처벌이 드물다'는 의료계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객관적 데이터 제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확보된 명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국회, 사법기관, 그리고 국민을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사법 환경이 결국 국민 건강에 위해를 끼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연구가 사법부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결을 이끌어내고, 나아가 필수의료를 살리고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제조합은 이번 중간보고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7월 말 최종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기반으로 연구발표회, 공청회, 추가 연구 용역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6월 초 출범할 차기 정부를 대상으로도 의사와 환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의료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 위원장은 "의료사법제도개선위원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번 연구를 시작으로 사법부 등과 다각적인 방법으로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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