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혈의 뜸 자극 음양맥상 악화 반응… 황제내경에도 '뜸' 적극 소개하지 않아"

[서암뜸의 온열요법 - 손에만 떠야 하는 이유와 효능 ①]

중국 침구의 최고 원전 '황제내경'에 뜸(灸)은 몇 자 안 돼
음양맥상 악화될 때 뜸뜨면 다른 병으로 변화 - 주의 강조

중국 침뜸(針灸)의 최고 원전은 약 1300년 전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황제와 신하들과의 문답 형식으로 쓰였다.

황제내경 표지

'황제내경(黃帝內經)'은 후대에 많은 학자들이 저술해 황제의 이름으로 의탁했다. 
'황제내경'은 영추편(침구학)과 소문편(한의학)으로 나눠져 있고, 소문 제12편 이법방의론(異法方宜論)에서 "북방은 천지의 기가 폐장(閉藏)하는 지역으로 그 지세가 높은 산 구릉이 자리잡고 있으며, 바람이 차고 얼음이 얼어 춥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광야에 거주하길 좋아하고 우유(牛乳)로 만든 음식을 주로 먹는지라 장(臟)이 차가워져 창만병(배가 크게 부풀어 오른 증상)이 잘 발생하는데, 이를 다스리는 데는 쑥뜸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쑥뜸요법은 북방에서 전래되었습니다"라고 했다(이상은 성보사 번역 '황제내경' 소문편에서 인용하였음).

북방지역은 추운 지방이면서 우유를 많이 먹어 장이 차가워서 발생하는 창만병에 뜸법이 좋다는 것이다. 신체가 찬 것과 내장이 찬 질환일 때 뜸법이 좋다고는 하였으나 구체적인 더 이상의 설명이나 처방은 없다.

'황제내경' 영추 제9편 종시편에서 촌구인영맥법(더욱 발전시킨 방법이 음양맥진법이다)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영맥과 촌구맥이 모두 세 배 이상 뛰는 것을 '음양구일(陰陽俱溢 : 음양이 모두 성해 넘친 것)'이라 하는데, 이와 같을 경우에 소통시켜 주지 않으면 혈맥이 막히고 기가 운행되지 않아 이(裏)에서 넘치므로 오장(의 眞陰)이 내부에서 손상됩니다. 만약 이를 뜸으로 치료하면 다른 병으로 변화됩니다"라고 했다(성보사 변역 '황제내경' 영추편에서 인용).

중국에서 본격적인 뜸법은 송나라 '침구자생경'때부터
뜸은 맥상이 악화되기 때문에 뜸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지 않아

'황제내경'에서는 침술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있었어도 뜸(灸)에 대한 내용은 위와 같이 몇 글자에 불과하다.

'황제내경'은 촌구와 인영맥법 중심으로 침·뜸 자극을 주었으므로 뜸을 뜨면 맥상이 악화됐기 때문에 뜸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지 않은 것 같다.

중국에서 뜸법을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은 송나라 1220년경 왕집중이 쓴 '침구자생경(針灸資生經)'을 저술하면서 인 것 같다. '침구자생경'은 경혈과 침구 처방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 후 원나라 1341년에 활백인(활수라고도 한다)이 저술한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에서는 14경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침뜸 처방을 했다. 명나라 1425년 진회가 저술한 침구서 '신응경(神應經)'과 '자생경', '십사경발휘'를 중심으로 경락혈을 소개하고 침뜸 처방을 하였다.

조선 초기에 의생(醫生)들 교육 목적으로 '자생경', '신응경', '십사경발휘' 등을 교재로 삼았고, 우리나라에서 '신응경(神應經)'은 숙종 때 목판(木板)으로 발간해 의학 교육으로 사용을 했었다.

성종 때 발간한 '신응경'의 권말에 일본인들이 전래돼 온 뜸법을 특별히 소개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인 단파(丹波)씨 등의 뜸법 전래 가문을 소개하고 옹(癰), 저(疽), 정(疔), 역절(癧癤), 나력(瘰癧), 창(瘡) 등을 뜸법으로 뜨는 처방을 자세히 소개했다.

성종 때는 이 뜸법이 신기하다 해 '신응경' 권말에 소개한 것은 매우 특이하다. 
모 박물관에 보물로 지정돼 있는 '신응경'은 앞부분의 일본인 뜸법에 대한 내용은 소개된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인조 21년에 중간(重刊)된 훈련도감 활자판에는 일본인 명의의 8혈 뜸법이 앞부분에 소개됐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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