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한약 첩약중 노인과 여성질환 치료용 초제를 대상으로 약국과 한약국에서 조제 가능한 100처방 일부를 대상으로 3년간 2천억원을 투입하여 보험을 적용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나서 한의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한의계의 숙원인 의료보험이 첫 적용을 앞두고 한의계에서 ‘비전문가’라고 주장하는 한약사와 한약조제시험을 합격한 약사에게도 보험적용을 포함시켜준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이 의료보험 적용 조치는 무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게 되었다. 현재 한약관련 의료보험 적용은 조제용 과립제 56종에 대해서만 되고 있고, 급여 총액이 180억원 대에 불과하다. 가장 불편할 수 있는 진실은 역시 한약 원료의 질과 직결된다. 한약 원료의 원가가 낮을수록 약가마진이 높은 현재의 첩약구조에 의료보험이 적용된다면, 원료 구입가 그대로만 의료보험 청구액이 인정되고 여기에 조제수가, 의약품관리비, 처방비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굳이 원가가 저렴한 한약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된다. 더군다나 한약 원료는 전문의약품 원료와 달리 농산물에 가까운 생산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허용할 수 있는 품질의 범위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에 따라 생산과 수입 자체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 사안을 접하면서 1990년대 있었던 한약파동이 다시 데자뷰되는 것을 느낀다. 당시 격한 대립 끝에 한약학과가 생기고 한약조제시험이 한시적으로 실시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결국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건강기능식품의 대두와 홍삼 제품의 유행이 기존의 한약시장을 상당부분 잠식했고, 시대변화에 첩약이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한의계의 불황을 부채질했다. 한약학과 진학생들은 금방이라도 한방의약분업이 시행되어 한약의 고마진의 직접 수혜대상자가 되는줄 알았다가 환상이 깨져나가는 것을 보아야 했고, 때마침 시작된 의약분업에 의해 기존의 약국가는 처방전을 한 장이라도 더 받는 것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한약과는 자연스레 멀어지고 약국용 한방제제 시장도 추락해버렸다. 결국 한약은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의사에게만 보험을 적용해준다고 해도 여기에 수혜대상는 없다고 본다. 일선 한의사들은 얘기한다. 첩약으로 만든 탕약은 한약을 잘 먹는 사람도 10일분인 한재는 잘 먹는다고 해도 두재부터는 챙겨먹기 힘들어서 빼먹는 일이 많아지고, 세 번째 한약을 지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전체 접 수혜97.8%를 아직도 첩약조제에 의한 탕약으로 유지하는 한약은 이제 소비자 편의적인 제형개발로 과감히 모습을 바꾸어야 한다. 아무리 진의 직보험을 광범위하게 적용한다고 해도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가 자발적으로 탕약을 찾는 일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표준화로 위에서 얘기한 원료 인정 범위나 약효, 안전성에 관한 논쟁도 시작점을 주지 않고, 투약량과 약효발현간에 근거중심의학적인 바탕이 될 수 있는 신제형 한약제제의 개발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 일단은 한의계가 첩약 보험적용을 거국적으로 수용하고, 그 다음에 한약의 미래를 그려갈 수 있는 한약제제를 개발해서 그 보험적용 범위를 넓혀가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하다. 한약파동 때도 그랬지만, 향후에도 현재의 투쟁은 돌아보면 승자 없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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