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지역은 필리핀 ‘수빅만’에 근접한 ‘아이타 부족’ 원주민이 사는 곳으로 의료혜택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곳이다. 서금요법 자원봉사는 환자와 직접 언어소통이 안되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다행스럽게 원주민 중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하는 마테레사씨가 통역을 해 줘 무사히 자원봉사를 할 수 있었다. 혈압, 맥박수, 체온, 나이, 음양맥진 분별 등을 기록하다 보니 대부분의 환자들이 편두통이 많았다. 특히 경항통, 어깨통증, 요통, 종아리통증, 위장장애 등을 호소했으며 음양맥진상으로는 담승, 방광승, 위승이 많았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맥박수가 높은 반면에 체온은 낮았는데 무더운 날씨로 인해 에너지 소모가 많아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은 거의 맨발로 다니고 있었으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먹을 것 등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 대부분 영양실조로 많이 야위어 있었다. 하루에 보통 30~40명에게 자원봉사를 했는데, 계속해서 찾아오는 원주민에게 전날의 통증에 대해 물어보면 다 나았다며 밝게 웃었다. 자극기구로는 서금요법(금추봉과 PEM, 뉴서암봉)을 사용했는데 그 효과는 아주 좋았다. 환자 중에 열 명 정도는 외상(손과 팔, 다리에 염증)으로 누런 고름 등이 줄줄 흘렀는데 알콜 소독 후 서금요법(은색 뉴서암봉 중형)을 도배하듯이 정성껏 붙여주고 그 다음날 보면 고름이 거의 다 빠져나와 깨끗한 새 살이 보였다. 며칠간 자극으로 상태가 호전된 원주민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감사의 표시로 어떤 분은 열대과일을 직접 따다 줬고, 또 어떤 분은 바나나로 요리를 해서 갖다 주었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하던 마지막 날에 수빅청장이 자원봉사 현장에 와서 서금요법을 직접 체험했다. “This is Koryo Hand Acupuncture Therapy”라고 설명하자, “자기가 6.25 전쟁 때 한국 참전용사였다”고 말했다. 81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얼굴엔 군인의 정의로움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봉사활동 마지막 날이라 영산대 부귀욱 총장도 와서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 격려해 주었다. 천 명 정도 되는 원주민들과 댄스타임까지 있는 잔칫날이었지만 나는 밀려드는 원주민들로 인해 환송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서금요법 자원봉사를 했다. 이날 원주민들과 헤어지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바다가 됐다. 비록 언어와 피부 색깔은 달랐지만 그들의 눈빛 하나만 보아도 뭔가 느낌이 전해져오던 맑고 순수한 아이타 부족의 원주민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내 목에 걸고 있던 타이스링을 그동안에 통역과 도움을 준 마테레사의 목에 걸어주고 돌아왔다. 1946년에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필리핀은 1950년 6.25 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고마운 나라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도우러 가야 한다고 발대식 때에 총장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앞으로 서금요법(고려수지침)은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은 물론이거니와 국제자원봉사도 시대에 발맞춰 ‘Global Volunteer Koryo Hand Acupuncture Therapy’로 거듭나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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