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 자율화법 무산 불구 불씨 여전

[이슈]한의협-뜸사랑 ‘침·뜸 전쟁’ 언제까지

한의협 “불법 허용하면 부작용만 초래”
뜸사랑 “한의사 침구 독점 납득 안된다”
“법제화 보다 안전성 검토 우선” 지적도

“당대의 침술가인가 희대의 자작극인가… 해마다 수많은 국민들이 불법무면허 한방의료행위로 고통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뿌리가 완전히 뽑히지 않고 있습니다”(대한한의사협회)
“한의사는 침․뜸을 몰랐습니다… 한의사들에게 더 이상 민족전통의술인 침․뜸을 맡길 수 없습니다”(뜸사랑)

구당 김남수씨가 운영하는 뜸사랑과 한의사들의 이익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회장 김현수)가 침·뜸 시술행위를 놓고 수년전부터 ‘침·뜸 전쟁’을 계속 벌이고 있다. 이들 두 단체의 침·뜸 전쟁은 최근 들어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일간지에 광고를 연이어 내면서 상대를 비방하고 자신들이 (침·뜸 시술을) 해야 안전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의사협회는 “침과 뜸은 고도의 수련과 교육을 통해 이뤄져야 하며, 이런 이유로 국가에서는 철저하고 엄격한 통제 아래 한의사 국가시험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며 “잘못 시술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의사협회는 이어 “지난해 2월 무면허 쑥뜸방에서 비만치료를 받던 소녀가 사망한 데 이어 2007년 5월 과도한 사혈요법으로 인천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했다”면서 “선량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부 불법 시술자들과 그들의 추종 세력은 즉각 불법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뜸사랑은 “한의사들이 무면허 침·뜸 치료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예로 드는 것이 운전을 할 줄 안다고 무면허운전을 허용할 수 있느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며 “일응 맞는 말인 듯 하지만 만약 운전면허를 6년제 대학을 나와야 시험을 칠 수 있게 한다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냐”고 비난했다.

뜸사랑은 또 “한의사는 1962년 의료법 개정으로 침구사가 없어진 틈을 이용해 한의사시험에 침구과목을 슬쩍 넣고는 법적인 근거 없이 침구를 독점해 버렸다”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당시 정책당국이 왜 그런 정책을 결정했는지 납득할 만한 답변을 듣고 싶다”고 반문했다.
  
▼침·뜸 전쟁의 발단=가깝게는 지난 2008년 9월 KBS 1TV가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 이야기’ 추석특집 프로그램을 여과 없이 방영하면서 한의사들을 크게 자극시킨 게 발단이 됐다. 현행법상 한의사와 구사만이 할 수 있는 뜸 시술을 침사인 김남수씨가 직접 시연하는 장면을 방영했기 때문이다.

KBS 측은 김씨가 지난 70여년간 약 50만명을 임상진료한 ‘현대판 화타’로 불린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올해 94세이지만 일주일에 4일간의 의료봉사활동과 하루 9시간동안 꼬박 서서 환자들에게 진료를 하면서도 전혀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건강비결이 바로 자신이 창안한 ‘구당기본침’과 ‘무극보양뜸’에 있다”면서 “침과 뜸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예로부터 침과 뜸은 전혀 해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프로를 지켜본 수많은 시청자들이 침과 뜸을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할 수 있다며 무분별한 침·뜸의 맹신을 경계했다. 한의사협회는 “구사 자격이 없는 김씨가 공영방송에 나와 의료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시청자들에게 왜곡된 의료정보를 제공했다”며 무자격 의료행위를 조장하거나 방관한 KBS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고려수지침학회(회장 유태우)는 “신체에 마구 시술하는 뜸은 맥박수를 증가시켜 성인병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며 신체 침·뜸의 부작용 문제를 제기했다.

방송 후 김씨는 서울시로부터 45일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영등포구보건소에서도 대한개원한의사협의회로부터 뜸사랑 국회 봉사실이 고발돼 자격정지 3개월이 추가됐다. 이로 인해 김남수씨가 결성한 뜸사랑의 전국 조직은 상당수 폐쇄되거나 와해되고 말았다.

▼뜸 시술 자율화 법안 무산=그러나 지난해 2월 16일 민주당 김춘진 의원 등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뜸 시술의 자율화에 관한 법률안’과 ‘침구기사’의 제도화를 위한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자 뜸사랑은 다시 탄력을 받았다.

김춘진 의원은 “현행법과 판례는 뜸 시술을 한방의료행위로 봐 뜸 시술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한의사와 평균 70세가 넘는 고령의 유사의료업자(구사) 9명에 불과하다”며 “금품 등 일체 대가 없이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할 경우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뜸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침구사제도가 일본의 잔재라는 이유로 새로운 침사와 구사인력을 양성하지 않은 탓에 현재 침구사는 일제시대 면허를 받은 침사, 구사 등 40여명만이 생존하고 있다”면서 “한방보조인력으로 침구기사를 양성해 한의사의 지도감독을 받아 한의원 등 한방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는 “뜸 시술은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행위로 의료사고가 계속 발생되고 있어 국민건강 보장을 위한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의사의 경우 6년간의 대학교육과 오랜 기간의 뜸 시술 경륜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6년부터 2008년 10월까지 37건의 화상, 염증 등 의료사고를 일으켰다”고 뜸 시술의 자율화를 반대했다. 복지부는 “뜸 시술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며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으면 큰 병을 실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의사협회도 “뜸 시술은 특성상 환자에게 2도 이상의 화상을 입힐 수도 있고, 화상으로 인한 합병증 발생으로 심대한 피해가 생길 수 있어 진단 등 한의학 전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 일반인의 시술은 매우 위험천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려수지침학회는 “신체에 뜸을 많이 뜨게 되면 심장에 열을 많이 나게 해 간경변과 폐병까지 일으킨다”고 경고했으며, 그 증거로 “한의학의 원전으로 꼽히는 동의보감 침구편에 뜸의 위험성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으며, 황제내경 영추경에도 ‘침하면 뜸하지 말고, 뜸하면 침하지 말라’고 언급돼 있다”고 제시했다.

그 후에도 김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행 의료관련법상 뜸은 한방의료행위로 1만8000여명의 한의사와 9명의 침구사만이 시술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면서 뜸 시술의 자율화를 촉구했으나 끝내 채택되지는 못했다.

▼침사에게 뜸 시술 허용도 불발=뜸사랑의 마지막 희망인 민주당 박주선 의원 등이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불발로 끝났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가 지난달 17, 18일 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신상진)를 열어 이 법률안을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법률안은 현행법상 한의사와 구사만이 할 수 있는 뜸 시술을 침사한테도 허용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인데, 의료법 81조 1항 끝부분에 ‘다만 침사는 보건복지가족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구사의 업을 할 수 있다’는 단서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의료법 81조(유사의료업자) 1항은 ‘시행되기 전의 규정에 따라 자격을 받은 접골사, 침사, 구사(이하 ‘의료유사업자’라 한다)는 27조에도 불구하고 각 해당 시술소에서 시술을 업(業)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주선 의원은 “현행 의료법상 침사 또는 구사는 1963년 이전에 구분된 자격을 받은 자로 해당 자격에 따른 시술행위만을 업으로 할 수 있어 1963년 이래로 침사의 업을 해 온 자가 오랜 경험과 식견을 바탕으로 뜸 시술을 하는 경우에도 처벌받도록 돼 있다”며 “환자에게 좀 더 폭넓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침사자격을 보유한 자에게 구사의 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이 법률안을 심의한 법안심사소위 위원들은 “특정인을 위해 법을 제정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침사와 구사는 엄격히 구분된 자격인데 침사에게 별도로 구사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법 개정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앞서 복지부는 “뜸 시술을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별도의 검증 없이 자격을 부여하려는 것은 침사를 침사·구사 복수자격을 가진 자와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되므로 헌법의 기본원칙인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으로 개정안의 취지를 수용하기가 곤란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한의사협회도 성명서를 내고 침사에게 뜸 시술을 허용하려고 하는 이 법률안의 즉각적인 폐기를 촉구했으며, 고려수지침학회도 이번 법률안의 부결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한의사협회와 뜸사랑이 벌이고 있는 해묵은 침·뜸 전쟁은 어느 정도 일단락된 셈이다. 그렇다고 논쟁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제2, 제3의 변형된 법률안이 언제라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들이 뜸 시술의 실험방법과 효과 유무도 잘 모르면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영화배우 장진영씨가 마지막까지 침·뜸 치료를 했다는 것조차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뜸 시술의 자율성을 법으로 보장하기에 앞서서 국가가 먼저 안전성, 유효성 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체계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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