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큰 기쁨이지만, 동시에 산모의 몸과 마음에 상당한 변화를 안기는 사건이기도 하다. 실제 뇌구조의 변화가 찾아오고 급격한 호르몬 변화로 인해 아기의 요구를 더 잘 알아차리도록 재조직된다. 동시에 수면 부족, 육아 부담, 역할 변화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상당수 산모가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출산 후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경험하는 산모는 절반을 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는 대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2주 이상 이어지고 일상생활과 육아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산후우울증일 수 있다. 우울한 기분, 잦은 눈물, 불안과 초조, 집중력 저하와 함께 본인과 아기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주목할 점은 치료가 필요한데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치료가 필요한 산후우울증의 유병률은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산모는 극히 일부에 그친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홀로 견디다 증상이 깊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우울 증상은 출산 이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임신 중 호르몬이 우울을 막아준다고 여겨졌으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임신 기간에도 적지 않은 산모가 우울과 불안을 겪으며, 이를 '산전우울증'이라 한다. 임신기의 정서적 어려움이 출산 후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임신 시기부터 마음 건강을 함께 살피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모연정신건강의학과 이상섭 원장은 "산전·산후우울증은 산모의 의지가 약하거나 성격 탓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 변화와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질환"이라며 "무엇보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죄책감 없이 자신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이어 "증상이 가벼운 경우에는 상담과 정서적 지지, 가족의 이해만으로도 호전되는 경우가 많지만, 증상이 깊거나 오래 지속될 때는 전문의의 평가를 바탕으로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며 "수유 중이거나 산전이라면 약물에 대한 우려로 진료를 미루기 쉬운데, 이 부분은 전문의와 충분히 상의하여 TMS 등 비약물적 치료와 같은 안전한 방향을 함께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엄마의 정서적 건강이 곧 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직결된다고 강조한다. 산후우울증은 산모 본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만큼,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의 관심과 지지가 회복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막연한 자책이나 방치보다는,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살피고 적절한 도움을 받는 것이 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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