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 前 심평원장, '아픈 의사, 다시 가운을 입다' 출간

병원과 사회를 이어가는 의사 김선민이 꿈꾸는 세상

첫 여성, 첫 내부승진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장, 세계보건기구(WHO) 수석기술관으로 일했고, OECD 의료의 질과 성과 워킹파티에서 여성 최초, 아시아계 최초로 의장을 맡은 한국인. 이 책의 저자 김선민을 설명할 때 따라 붙는 화려한 수식어이다.

그러나 이 책에 담긴 내용은 결코 빛나는 성취를 이룩한 이의 승승장구 자화자찬이 아니다. 의사이기 전에 수차례의 수술과 투병을 반복한 환자로서, 사회의 소수자인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고 살아가며 분투했던 삶의 애환과 더불어 공공의료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소수자의 인권과 건강에 대한 문제제기와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저자는 말 그대로 '아픈 의사'다. 투병생활을 하며 의대 본과와 인턴 생활을 마친 저자는 건강과 체력을 고려하여 환경의학 분야에 지원해 공중보건과 산업공단에서 환자들을 돌보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검진을 해주면서 의료의 영역은 절대 시장에 맡길 수 없고 사회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이후 저자는 2000년 의사파업 당시 비판의 글을 기고하는 등 의료의 공공성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길을 걸어왔다.

늘 소수자의 길을 걸어왔던 저자의 선택에서 예외적인 사건은 모든 이들이 원하는 자리인 심평원장 자리에 지원한 것이다. 서울의대의 소수자인 '홍일점' 여학생으로서 자기 검열을 해오며 살아왔던 자신의 한계를 깨고 욕망하는 것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저자는 책에서 지원 이유를 밝힌다. 내가 자격이 있는지는 인사권자들이 판단할 것이고 도전조차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처음으로 욕망하는 일에 도전했고 심평원 첫 여성, 첫 내부 승진 원장이 되어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한다.

이 책에는 김선민 개인의 인생 이야기를 넘어 여성 의료인, 병원과 사회를 잇는 의료인, 한국 의료와 세계 의료를 잇는 의료인으로 자기 삶을 채워가는 이야기가 폭넓게 담겨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대한민국 의료와 방역의 중심에 서울대의대 1년 선후배 사이인 정은경 전 질병 관리청장과 김선민 심평원장이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정은경 청장은 추천사에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두 사람이 함께 감염병 위기 극복을 해왔음을 밝혔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에게서 의학드라마 <라이프>에 등장하는 의사 예선우의 모습이 보인다. 신체적 한계 때문에 병원이 아닌 심평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모습, 차선의 선택이지만 최선의 삶으로 바꾸어 가는 의지의 인간을 지면에서 접하게 된다. 실제로 김선민 저자는 드라마 <라이프>의 내용 자문을 해주었고, 추천사를 쓴 이수연 작가는 김선민 원장을 모델 삼아 장애가 있는 심평원 직원 예선우를 탄생시켰다. 이런 삶의 굴곡을 따라가다 보면 59세에 태백의 직업재활병원에서 환경의학전문의로 일하는 저자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현대 의학의 발전, 한국사회의 변화와 사회적 연대, 자신이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따뜻한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고 말이다. 이 책은 아픈 의사 김선민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제안이자 여성들에게 보내는 응원, 그리고 소수자와 약자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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