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등 의료단체에서는 성분명 처방이 의사의 처방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자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불합리한 제도라며 시범사업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약사회에서는 정부가 예정대로 시범사업을 실시해줄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시범사업을 실시하는 국립의료원에서는 의료단체의 요구를 안 받아들일 수도 없고, 보건복지부의 지시를 안 따를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사협회 집행부는 26일 국립의료원 강재규 원장과 면담을 갖고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철회에 대한 의협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했다. 의협은 “시범사업 해당병원인 국립의료원이 의사이자 공무원으로서 곤란한 입장은 있겠지만 국민건강을 위한 진지한 논의와 의견수렴을 통해 시범사업이 백지화될 수 있도록 힘써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 자리에는 의협에서 사승언 상근부회장, 임동권 총무이사, 박정하 의무이사 등이 참석했고, 국립의료원에서 강 원장, 박하정 진료지원부장, 이영태 약제과장, 이홍순 진료부장 등이 함께했다. 의협은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절감 차원에서 도입하려는 성분명 처방은 말도 안 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므로 철회돼야 마땅하다”며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에 대해 확고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이어 “모든 의약품이 신뢰할 만한 생동성 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며, 현재 일부 약사들이 하고 있는 불법임의조제 및 약 바꿔치기 같은 불법적 행위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약화사고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약물부작용 감시체제 등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며, 전면적인 의약분업 재평가를 통해 정부가 추구하는 건강보험 재정절감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승언 상근부회장은 “선진외국 어느 나라도 의사 처방권을 제한하거나 강제하는 나라는 없으며, 회원 정서나 개원가의 경영난 등을 미뤄볼 때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은 절대 시행돼선 안 된다”고 못박고 “공직자로서 어려운 입장을 잘 알지만 정권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명백히 잘못된 것을 거부하고 옳은 일을 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정하 의무이사는 “의약분업 때도 시행 전 문제점을 누누이 지적했고 시범사업도 실패했는데 결국 강행돼 지금 상황을 초래했다”면서 “성분명 처방은 의약분업보다 회원들의 저항이 더 크고 국민건강상 중차대한 사안인 만큼, 재량권을 갖고 있는 강 원장이 성분명 처방을 막을 좋은 방안을 생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임동권 총무이사는 “같은 의사지만 시범사업 기관이라는 점 때문에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성분명 처방의 위해성과 폐단을 명확히 인식하고, 의료계 민의와 의협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서로 긴밀히 소통하며 성분명 처방 문제에 함께 대처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국립의료원 강재규 원장은 “성분명 처방으로 인해 의사 진료권이 침해되어선 안 되며, 문제의 생동성시험이나 각국 사례 등은 다시 확인하고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국가이익과 국민건강 두 가지를 위해 어떤 묘안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으니 의료계에서 좋은 의견을 많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강 원장은 지난 18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성분명 처방에 따른 전산 변경 작업과 처방 대상 약품에 대한 생동성시험 결과 등 안전성 검토, 문전약국 상황 파악 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할 때 9월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는 상당히 힘들다고 본다”며 “당장 전산작업을 하는 데만 5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올해 확보된 예산이 없어 시행시기를 못박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강 원장은 “시범사업은 시범사업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제한적이고 최소한의 범위에서 실시해야 한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단일기관에서 한 제한적인 시범사업 결과만 놓고 성분명 처방을 전면 확대 실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박하정 진료지원부장은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은 결과성이 확보된 사항에 대한 확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항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라며 “제한된 범위에서 시범사업을 시행해 시사점과 장단점을 제시하면 이에 따라 정책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로선 국립의료원의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의 시행시기가 당초 알려진 9월에서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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