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서울 도심이라 하면 서초나 강남을 떠올리지만, 예전에는 종로와 을지로가 서울을 대표하는 거리였다. 특히 종로 일대는 여러 가지 추억거리가 많다. 조선시대 고관들의 행차를 피하고자 일반 서민들이 많이 드나들었던 피맛골은 한국전쟁 후에도 왕래가 흔했고 종로 뒷골목에는 한량들이 자주 드나들던 명월관도 있었다. 인력거를 탄 기생들이 줄줄이 총독부 전매청 옆에 있었던 명월관을 드나들던 모습이 기억난다.
종로3가 뒷골목에는 반공개적인 집창촌도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집창촌 하면 종로3가라 해서 젊은 사람들에게도 ‘종삼’이란 말이 낯설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집창촌을 따라 성병진료를 전문으로 했던 의원들이 많았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했지만 여경구 박사는 종로3가에 동남의원을 개원해서 성병환자를 치료했고, 그 후에는 삼부의원 같은 곳이 널리 알려졌다. 그 시절 집창촌에 드나들면 걸리는 대표적인 성병이 바로 매독과 임질이었다. 특히 매독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줘서 말년에 뇌매독으로 고생하다 죽는 사람도 있었고 온 몸으로 병변이 퍼져나가 코가 떨어지고 눈이 머는 이른바 창병도 있었다.
19세기 일본이 자랑하는 재미의학자 노구치 히데오(野口英世)는 독학으로 의학을 공부하고 미국 록펠러 연구소에서 매독균을 발견해 뇌매독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질병도 바뀌었다. 이제 매독에 걸려 코가 떨어지고 눈이 먼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옛말이 됐다. 임질이 심해서 말년에 소변이 나오지 않아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병은 미의 여신 비너스를 잘못 건드려 생긴 병이라고 해서 영어로는 ‘Venereal Disease’라고 한다. 페니실린을 위시한 여러 가지 항생제가 치료제로 쓰이면서 매독이나 임질 도 점차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의정부와 동두천 그리고 파주에는 한국전쟁 이후 많은 미군이 주둔했다.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술집과 음식점이 늘어나자 접대하는 여자들도 많아졌다.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성병이었다. 성병에 걸리는 병사들이 증가하면서 미군들의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보이지 않는 무역’의 주역으로 달러를 벌어들였던 접대부들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성병관리소를 운영하던 시절도 있었다.
역사를 바꾸어 놓은 역병을 들라면 첫째로 성병을 꼽을 수밖에 없다. 이제 병도 줄어들고 약도 좋아진 세상에서 성병을 되돌아본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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