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에 헌법재판소가 형법의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법을 고쳐야 하는 시한이 올 12월 31일까지. 이에 따라 정부가 지난 7일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안을 내놨다.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의 낙태죄 관련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주수 제한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낙태죄 폐지 찬반 양측 모두 비판적 견해를 내놓으면서 개선 요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안을 보면, 임신 14주까지 임신중단이 가능하고 14~24주에는 지금까지 예외적으로 허용한 경우에 더해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경우 임신중단이 가능하다. 헌재는 임신 주수 22주 안팎을 '헌법불합치' 기준으로 명시했지만 정부안은 임신 14~24주 사이 기간일 경우 조건부로 낙태를 가능하게 해 여성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낙태 전면 자유를 허용한 14주 이내, 조건부 허용인 14~24주 시기 기준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또 임신 14주까지는 임신중단을 처벌하지 않고, 24주까지는 특정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중단할 수 있도록 해, 정부안은 낙태죄를 그대로 존치시켰을 뿐 아니라 그동안 사문화되고 헌재가 위헌성을 인정한 낙태 처벌 규정까지 되살린 퇴행이라는 것.
여성단체들은 "여성마다 생리일자가 불규칙하거나 몇 달씩 건너뛰는 경우도 많아 스스로도 정확한 생리일을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환자들이 생리일을 잘못 기억하면 16주 정도까지는 의사들도 확인하기가 어렵고 태아의 신체 부위마다 주수도 다르므로 ‘14주’라는 기준으로 처분이 갈리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간 우려를 표했던 산부인과의사들은 "임신 10주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과 함께 "자연 유산을 유도하는 '먹는 낙태약'은 산부인과에서 진료 후 원내 투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이하 산부인과계)는 '낙태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산부인과계는 "정부와 입법부는 그동안 법과 괴리돼 온 낙태 현실을 개선해 무분별한 낙태는 예방하면서 불가피한 낙태는 여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시술할 수 있도록 다음의 산부인과 의사들의 입장을 잘 반영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산부인과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산부인과 의사의 낙태 진료 선택권 인정이다. 산부인과계는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 관련 의료 행위와 시술기관으로 안내 등 관련 절차에 선택권을 가져야 하는데 환자의 생명이 위급한 때는 예외로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안전을 위해 낙태 시술자는 산부인과 의사로 한정하고 무자격자에 의한 낙태는 처벌을 강화한다. 또한 시술 의사는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시술 과정만 담당한다"는 것이 명문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여성의 안전과 무분별한 낙태 예방을 위해 사유의 제한 없는 낙태 허용 시기는 임신 10주 미만으로 하며 10주 이후 낙태를 할 경우 △모체 사유 △태아 사유 △의학적 사유에 따라 가능하도록 열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으로 약물을 통한 낙태도 가능해지면서, 낙태약의 정식 수입 여부도 관심거리다.개정안이 통과되면 현재 불법인 유산 유도제 ‘미프진’이 합법화된다. 그러나 처방전 없이 복용할 시의 부작용, 불법 유통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 등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산부인과계는 "약물낙태 도입 여부는 국내 임상 시험 후 신중한 검토를 요하는데 만약 도입 시에는 ‘의약분업 예외 약품’으로 지정해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직접 투약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아울러 "미성년자의 낙태 시술은 부모 등 법정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단 미성년자가 부모 등 법정 보호자의 동의 단계를 거부하는 경우는 정부가 정한 상담과 승인 절차를 거친다. 나아가 현행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에서 행정처분하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 규정 중에 ‘낙태’ 조항은 삭제하도록 개정한다"고 덧붙였다.
산부인과계는 "정부와 입법부는 여성의 안전을 위한 산부인과의 요구안을 반드시 반영해 입법하기를 바란다"며 "산부인과 의사들은 일선에서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도우며, 불가피한 낙태의 안전한 시술과 낙태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다짐했다.
한편, 민주당 권인숙 의원과 박주민 의원은 정부안에 대해 '낙태 전면 비범죄화'를 전제로 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 또한 "임진 주수와 관계없이 낙태를 비범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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