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40대 가장이 주고 간 마지막 선물

어린이날 발인한 고 이주영씨, 8명에게 장기기증해 새 생명 안겨줘

  
“사랑하는 예림, 예지, 범희야 미안하다. 어린이날 선물도 사주지 못하고. 대신 아빠는 아픈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단다.”

어린 세 자녀를 둔 40대 가장이 뇌사로 세상을 떠나면서 장기를 기증해 주변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모든 어린이들이 희망과 꿈에 부풀어야 할 어린이날이지만, 6살 범희, 8살 예지, 11살 예림에게 이제 어린이날은 평생 잊지 못할 슬픈 기억의 날이 되고 말았다. 어린 세 남매의 아버지 이주영(41, 하남시 덕풍동)씨가 뇌사기증으로 8명의 환우에게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5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이씨의 발인식에서 어린 자녀들은 아빠와의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이씨가 뇌사에 빠진 것은 지난 4월 30일. 회사 직원과 회식 후 집에서 돌아온 이씨는 저녁 7시 쯤 구토와 함께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뇌혈관이 많이 터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던 가족들은 살아날 가능성이 1%도 없는 뇌사상태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이씨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던 가족들은 가족회의 결과 뇌사기증을 결심했다. 부인 이미자(37)씨에게 이씨의 남동생이 ‘형이 좋은 일을 하고 갈 수 있도록’ 뇌사기증을 권유했고, 고심하던 부인 이씨는 곧 뇌사기증을 동의해 주었다.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어린 세 자녀를 보며 넋을 잃고 있던 부인 이씨가 선뜻 뇌사기증을 동의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가족 중에 장기기증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정 오빠인 이병욱(43, 서울 관악구 신림동)씨가 지난 2002년 만성신부전을 앓던 친구를 위해 신장을 기증했던 장기기증인이었기에 남편이 좋은 일을 하고 떠날 수 있도록 이해해 주었던 것이다.
  
장기손상을 막기 위해 혈압강하제를 투약하며 산소호흡기에 몸을 의존한 채 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로 이송된 이씨는 수술팀에 의해 장기적출 수술을 받았으나, 지난 1일 새벽 안타까운 삶을 마감했다. 이씨의 뇌사기증으로 적출된 장기 중 신장 2개는 각각 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만성신부전을 앓는 환우에게 이식됐으며, 각막 2개과 심판막 4개도 다음주 중에 시각장애우와 심장질환 환우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컴퓨터 업체에 근무했던 평범한 회사원인 고 이주영씨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남달랐다고 한다. 부인 이씨는 “아이들이 아직 어려 잘은 알지 몰라도 아빠가 좋은 일을 하고 갔다고 알고 있다”며 “남편은 떠났지만 아이들에게는 항상 좋은 아빠, 멋진 아빠로 기억될 것 같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뇌사자수는 141명으로 2005년 91명에 비해 50명 정도 증가했으나, 1만7886명에 달하는 이식대기자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3월까지 기증자수도 35명에 불과해 뇌사자의 기증을 기다리다 못한 환자들이 중국으로 장기매매 원정이식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척박한 현실에서 자신의 장기를 기증, 8명의 생명을 살려내고 세상을 떠난 한 40대 가장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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