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의방유취(醫方類聚)와 백낙준 박사

허정 교수의 보건학 60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전 보건대학원장)

통문관에 드나들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기왕 한문을 배운 김에 반듯한 내각장판의 사서삼경을 사고 싶었으나 너무 비싸서 복사본을 구입했다. 또한 일부 역사학자들이 평가절하하고 있는 조선사편수회에서 발행한 조선사 한질도 복사본으로 구입했다. 이 조선사는 조선총독부에서 돈을 대서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것이다. 물론 일본은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고 삼국유사에 나오는 선사시대를 부정한다고 해서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 역사를 실증적으로 공부하기에 매우 편한 것이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사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역사문헌에 토를 달아 펴내서 읽는 사람에게 아주 편하다.

이곳에서 의학을 공부한 저자에게 이승만 정부 때 문교부장관을 지낸 백낙준 박사 얘기도 들었다. 아시다시피 백낙준 박사는 오랫동안 연세대 총장으로 있었고 서양사람들에게는 ‘조지 백’으로 불렸던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다.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고유문화를 잘 보존해야한다는 의미에서 나에게 충고처럼 한 말은 우리나라가 일본과 수교조약을 맺고 부산이나 제물포, 원산 등에 개항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우리나라와의 수교조약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의방유취 세질을 조정에 선물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의방유취가 온전하게 전해져있지 못했다. 이를 안 일본정부가 세종때 만들어졌던 의방유취 세질을 조정에 선물로 보낸 것이다. 

아는 바와 같이 세종대왕은 의학분야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의방유취를 위시해서 동의보감의 기초가 된 향양집성방과 무원록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의방유취는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하고 일본이 가지고 있던 것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러나 조정은 이 책들이 얼마나 귀중한지 실감하지 못해 일제시대에 이르자 고서상에 나오게 됐다고 한다. 이때 백낙준 박사가 큰돈을 들여 의방유취 한질을 사서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했고, 현재 연세대학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부끄러운 얘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들은 얘기가 또 있다. 한국사를 공부하려면 일차문헌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가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과거에 아무리 훌륭한 업적이 있었다 해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면 후세의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예전 시골에선 집안 도배를 할 때 대대로 내려오던 고서들을 초벌로 썼다고 한다.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였겠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 이상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백낙준 박사가 큰돈을 들여 의방유취를 도서관에 기증한 업적도 널리 알리고 싶다. 훌륭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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