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계란에 가공식품까지 '먹을 게 없다'

[기획] 생활 속 화학물질 공포-무너지는 '식탁 안전'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시작된 먹거리 불안감이 가공식품으로까지 번지면서 말 그대로 ‘식탁 포비아(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용가리 과자(질소과자)'와 '햄버거병'에 이어 최근 '담뱃재 소주', '살충제 계란' 까지 논란이 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친환경'으로 포장됐던 계란에서 대거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이제 소비자들은 대한민국의 식품안전관리체계 그 자체를 믿지 못하고 있다. 

달걀 수요가 줄어들자 지난 달부터 대형 마트 3사는 일제히 가격을 낮췄지만 소비자의 발걸음은 뜸하기만 하다. '에그 포비아' 때문이기도 하지만  '친환경 인증'만 믿고 비싼 돈을 들여 구매했던 소비자들의 배신감도 커진 상황이다.

'푸드 포비아'가 형성된 건 최근 잇따른 먹거리 안전사고 때문이다. 달걀뿐만 아니라 먹거리 전반에 대한 걱정이 크게 늘어났다. 닭고기는 거의 매년 AI가 발생할 때마다 수난을 겪었고, 지난달에는 햄버거를 먹은 4살 아이가 콩팥이 손상되는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걸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햄버거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또 천안의 한 워터파크에서 초등학생이 질소 과자, 일명 ‘용가리 과자’를 사 먹은 후 위에 구멍이 뚫려 수술을 받았다. 액체질소는 영하 200도 가까이 내려가는 만큼 직접 섭취하거나 피부에 접촉할 경우 동상, 화상을 입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급기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용가리 과자 등 액체질소가 남아있을 수 있는 식품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정부가 질소과자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언제나 사고가 터진 이후에 뒷북대응을 한다고 지적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먹거리 불안감은 지난달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 비롯됐다. 지난달 15일 경기도 남양주 친환경 산란계 농장에서 생산된 달걀에서 피프로닐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정부는 관계기관 합동으로 특별점검반을 구성해 전국 산란계 농장 전수 조사에 나선 것. 


▲'살충제계란' 파동으로 촉발된 먹거리 불암감이 가공식품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열흘 간 1239개 산란계 농장에 대한 계란 출하 중지와 전수검사를 실시해 부적합 판정을 받은 52개 농장의 계란을 전량 폐기했고, 적합판정을 받은 계란을 시장에 출하하도록 허용했다. 계란의 유통경로를 추적해서 빵과 과자 같은 가공식품에 부적합한 계란이 들어갔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지만 이미 유통과정에서 많은 계란이 소진됐기 때문에 계란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실제 제조가공업체에도 49개 부적합 농가의 계란이 공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15일부터 20일까지 유통단계에서의 추적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조가공업체에도 공급된 것이다.

식품업계 초비상…소비위축 우려
최근 혼밥·홈술족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돈육가공품(족발, 편육)에서도 식중독균과 대장균 등이 검출됐다.

한국소비자원이 시중에 유통·판매 중인 족발 및 편육 30개 제품을 대상으로 위생 및 표시실태를 조사한 결과, 다수의 족발·편육 제품에서 식중독균·대장균군 등이 검출돼 위생관리 강화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햄버거를 섭취한 어린이가 용혈성요독증후군(일명 햄버거병)에 걸렸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햄버거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소비자원이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햄버거 38종의 위생상태를 조사한 결과, 햄버거병 유발균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맥도날드 불고기버거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황색포도상구균이 기준치 3배 이상 검출됐다. 1개 제품에서 식중독균인 황색포도상구균이 기준(100/g 이하) 대비 3배 이상 초과 검출돼 위생관리 강화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전문가들은 1개 제품에서만 검출됐지만 햄버거는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취약한 어린이가 즐겨먹는 대표적인 ‘어린이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보다 철저한 안전관리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또 햄버거와 같이 김밥 등 식품들은 현장에서 바로 조리해서 판매되는 식품들인데 아무래도 위생적으로 오래 보관하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구입해서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식품업계는 침체된 내수경기가 이번 파동으로 더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외식업계는 달걀이 사용된 일부 베이커리 메뉴 판매를 중단하거나 자체 검사에 돌입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각종 과자는 물론 국민 식품으로 꼽히는 라면, 분유에까지 달걀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당분간 계란을 먹지 않겠다”며 대체 식재료나 식품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살충제 계란’ 정부 부실관리 도마 위
소비자단체들은 이번 파동으로 먹거리 안전에 대한 국가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농가의 살충제 투입경로를 확실히 파악해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도록 해야 한다”며 “소비자들이 달걀뿐만 아니라 식용 닭고기 안전에 대해서도 불안해하고 있으므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닭고기의 잔류농약 검사도 당장 실시해야 한다”고 입장이다.

또 “향후 농장, 사료, 도축, 가공, 유통까지 철저하고 정기적인 안전점검도 뒤따라야 한다. 아울러 HACCP 인증과 친환경 인증에 대해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는 '식품인증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계란 파동은 정부와 축산업계를 향해 큰 과제를 던졌다. ‘살충제 계란’으로 촉발된 ‘먹거리 공포’는 정부의 부실한 관리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당장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모든 관련 부처와 함께 안전과 안심을 향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 체제를 갖추고 실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도 개선 의지를 밝히고 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복지시설, 군대, 직장 등의 단체 급식소에 부적합한 계란이나 닭고기가 공급되지 않도록 교육부, 보건복지부, 국방부, 고용노동부, 산업부 등 모든 관련부처가 함께 챙기겠다는 것이다.

또 산란계 농장을 비롯한 계란의 생산농장과 유통의 과정은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지체 없이 조치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각종 먹거리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식품 제조·판매업체의 자성이 필요하며 관계 기관의 철저한 지도점검을 통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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