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식품·삼양사·정식품이 갑질논란과 도덕성 흠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초까지만 해도 본사에 출근해 활동했던 박승복 샘표 회장이 별세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유독 장수하는 창업주들이 많은 식품업계지만 세월 앞에서는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었다. 1~2세대 경영인들이 하나 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갔다.
올 들어 타개한 식품업계 창업주는 지난 4월 임대홍(96) 대상그룹 회장에 이어 지난 9월 오뚜기 창업주 함태호(86) 회장이 생을 달리했다. 2세 경영인으로서는 샘표 박승복(95) 회장이 타계했다.
실질적인 경영권은 오래 전에 2~3세들에게 물려줬기 때문에 선친들의 죽음이 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오히려 현 경영진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더욱 확실히 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 1~2세대들이 야속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자리를 2~3세대 경영인들이 물려받으면서 그룹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상은 2세 임창욱 명예회장, 오뚜기는 2세 함영준 회장이, 샘표는 3세 박진선 사장이 오래 전에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대상-MSG 논란 딛고 재도약
임창욱 대상 회장은 1987년 취임 이후 사업 확장을 적극 추진했다. 90년대 종합식품 브랜드인 청정원 브랜드를 출범한데 이어 미원과 세원의 합병을 통해 ‘대상’으로 그룹명을 변경했다. MSG 유해성 논란에 휩싸여 오랜 시간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논란이 종결되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14년 미원 제품명을 발효미원으로 바꾸고 미원을 상징한 붉은 신선로 문양을 축소하는 등 디자인 변경을 시도하면서 과거의 화려했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지난 1일 창립60돌을 맞은 대상그룹은 라이신 사업을 신 성장 동력으로 삼아 글로벌 바이오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오뚜기-우려 불식·성장세 유지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2010년 3월 경영권을 승계 받았을 때만 해도 주변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회장 승진 직후 주력부문인 참치통조림과 카레 등이 경쟁에서 밀리며 업계 5위로까지 밀렸기 때문이다. 함회장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인수합병 등을 통해 차(茶)와 건강기능식품으로 까지 확대했으며 해외 수출에 많은 공을 들였다.
오뚜기의 올 3분기 실적은 진 짬뽕 등 면류와 냉동식품 매출 증가에 힘입어 양호한 성적을 거뒀다.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0% 증가한 453억1315만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5164억4388만원으로 2.6%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8.8% 늘어난 357억8538만원이다. 2007년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달성한 이후에도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올해는 매출 2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오뚜기 매출은 전년 대비 5.7% 증가한 1조8831억원을 기록했다. 함영준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 받았을 때만 해도 재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최근 경영성적은 이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샘표-‘장류 세계화’ 수출로 활로
이미 일찌감치 선친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박진선 샘표 사장은 지난 2013년 ‘장류의 세계화’추진을 선언하고 한국음식을 해외에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정체된 내수시장을 수출로 극복한다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박 사장은 이를 위한 첫 걸음으로 서울과 경기, 충북에 분산되어 있는 연구시설을 통합해 충북 오송에 발효전문 연구소인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을 건립한 후 새로운 장류 개발에 도전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전통 장류를 비롯하여 각종 소스와 제품들을 세계 76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4일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스페인 바스크컬리너리 센터에서 열린 '발효’ 주제 심포지엄에서 한국 발효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도 했다.
샘표는 노사분규가 없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사람을 중시하는 3대의 경영철학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종업원들에게 급여를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종업원은 급여 인상을 미안해한다. 서로 간에 미안해하는 풍토가 생산성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23억원으로 전년 대비 34.5% 증가했으며, 매출액은 2613억원으로 4.4%, 당기순이익은 139억원으로 98.5% 각각 늘었다.
삼양식품-도덕성 흠집·실적 부진
이와 대조적으로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과 김만식 몽고식품 전 명예회장은 실적부진과 도덕적 해이 논란으로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삼양식품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농심과 1, 2위를 다툰 대표적인 라면회사였지만 2013년을 기점으로 오뚜기에 밀리고 최근에는 팔도와도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업계 3위 자리까지도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5월 말 기준 라면시장 점유율은 농심이 51.3%로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오뚜기가 23.4%, 삼양식품 10.5%, 팔도 10.4% 순을 보였다. 그러나 삼양식품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는 반면 팔도는 상승세를 타고 있어 순위는 조만간에 뒤집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양식품의 국내 라면 매출은 올해 3분기 1644억79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9% 늘었지만 2년 전인 1743억원 보다는 100억원 이상 적다.
전 회장은 지난해 도덕성에 흠집을 남겼다. 지난해 마트에 라면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계열사인 내츄럴삼양의 라면 스프를 끼워 넣어 부당이익을 챙기게 해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더구나 전 회장의 아들이 내츄럴삼양의 2대 주주인 비글스의 지분 100%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몽고‧ 정식품, 갑질논란 오점
몽고식품 2세 경영인 김만식 전 명예회장 역시 갑질논란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김 전 명예회장은 지난해 연말 운전기사를 폭행한 사실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김 전 명예회장은 곧바로 사과하고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불붙은 반기업 정서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갑질논란에 휩싸인 김 전 명예회장은 결국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111년 전통의 회사가 김 전 명예회장의 '갑질'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정식품의 2세 경영인 정성수 회장도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어려움을 자처하고 있다. 정식품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이 2108억6424만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3.3% 성장했지만 직전 2년 동안 연이어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점을 감안할 때 결코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정식품 역시 갑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정위는 대리점에 제품 구입을 강제했다는 이유로 2년전 2억3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업계는 정식품이 어려움을 겪게 된 이유를 시장 1위에 안주한 나머지 급변하는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연구개발을 도외시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업계 창업주들이 떠난 자리를 2세들이 메우면서 경영일선에 나서면서 사업다각화와 시장변화에 대처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일부 기업의 경우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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