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유독 퇴임식을 생략하는 고위직 공무원이 있다. 지난 10일 자진해서 김덕중 청장에게 사직서를 낸 동기생 61년(53세)생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이 바로 그다. 역대 차장출신 가운데 ▲곽진업 씨(경남. 행시12회) ▲황수웅 씨(경북. 14회) ▲정병춘 씨(전남. 22회) ▲김문수 씨(경남. 25회) 등이 차장에서 공직생활을 마감했고 이들 모두 아까운 나이와 시기에 국세청장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 번 박윤준 전 차장(서울. 행시27회) 만큼이나 그의 퇴장을 아쉬워 하는 세정가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박 전 차장의 퇴장에 대해 그가 그간 조직에 기여해온 족적과 업적을 기려볼 때 너무 아까운 국가자산이 이렇게 떠나는 점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 남아 있는 직원들의 한결같은 중론이 아닌가 싶다.<이에 본지는 그의 퇴임사를 입수 전면게재 한다. 공직자들이 되새기고 곱씹어 볼 대목이 곳곳에 스며 있다.> ■ 물러가며...[작성일시:2013.4.10.07:57:50] 오늘 28년여의 공직생활을 마감합니다. 후회는 있지만 미련은 없습니다. 24세에 공직에 들어 왔으니 철들고 공직 말곤 한 것이 없습니다. 공직의 무거운 옷을 벗고 그냥 시민으로서, 하라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하는 설레임도 있습니다. 인생의 한 단락을 짓자하니 지나간 일들이 떠오릅니다. 제게는 소중한 기억들이지만 여러분께 딱히 말씀드릴 만한 것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칫 제 자랑이 되거나 신파로 흐를까 걱정도 됩니다. 늘 상 선배님들과 얘기할 때의 제 불만이 바로 '입만 열면 당신 자랑' 이었습니다. 나는 그리 않으리라 다짐했었는데 돌아보니 특히 최근에 많이 그랬던 것 같네요. 듣기 싫었는데 참아준 분들에게 사과드리면서, 나갈 때 나마 아니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몇 가지 당부로 간단한 퇴임의 변을 삼고자 합니다. '무엇이 되었는가' 보다 '무엇을 했는가'로 여러분의 선배와 동료 그리고 후배들을 바라 봐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되었는가는 관심 없어도 알게 되나 무엇을 했는가는 그 사람에 대해 특별한 관심 가지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그리 하자고 당부 드리는 것은 무엇 보다 후자가 더 공정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되는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는 것은 상당 부분 자기 마음먹기 따라서 가능하고 사람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납니다. '무엇이 되는 것'은, 날 때 이미 정해진 것 혹은 소시 적 성과에도 적잖이 좌우됩니다. 그걸로 사람을 평가하고 거론한다면, 어떤 이는 홍복으로 좋지만 어떤 이는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쉽지 않겠지만 부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되었든, 그 자리에서 하게 될 어떤 것으로써, 사람들의 좋은 평가를 받겠다는 동기가 부여된다면, 거창한 그 무엇이 되지 못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 아닐까요? ------------------------------------------------------ ------------------------------------------------------ 다음, '과세여부를 검토하고 판단함'에 있어 합리성을 유지해 달라는 당부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말씀이지만 제 공직 과정에서 그러지 못했던 많은 분들을 보아 왔고 저 또한 그리 못했던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또한 쉽지만은 않은 일 같습니다. 특히 이 문제는 '사람의 일관성이나 신뢰성'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저도 내일이면 바로 신분은 바뀌게 되지만, 결국은 세금에 관한 일로써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의 미래도 대부분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비록 처지가 달라짐에 따라 어느 정도 논리의 변화는 불가피하겠지만, 재직 시와 퇴임 후의 논리가 너무 바뀌게 되면, 그 논리 자체의 당부나 다른 사람들의 눈을 떠나 스스로 우습고 초라해 집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재직 시에 항상 '나의 과세논리가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것인가'를 자문해야 합니다. 그런 태도가 각급 과세처분 전반에 더욱 견고해 지면 소위 '전관예우'가 작용할 소지도 작아질 것입니다. ----------------------------------------------- ----------------------------------------------- 마지막 당부 입니다. 경쟁의 지평을 조금 넓혀 주셨으면 합니다. 경쟁을 조직 내부로 국한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민간의 전문가들 나아가서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의 국세청 사람들을 경쟁자로 삼아 주길 바랍니다. 경쟁력의 원천은 결국 생각입니다. 과세 인프라 애길 많이 하지만, 그 인프라도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사람의 생각은, 많이 만나고 읽고 고민해야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시간 없는 것 뻔히 알면서 한가로운 얘기한다고 힐난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환경일 겁니다. 어쩌면 모두가 한가롭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이 더욱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당부를 늘어놓다 보니 여러분 마음속의 '너는?' 하는 힐문이 들리는 듯하여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퇴직을 핑계 삼아 '당부' 라는 명목을 달았으나, 실은 제 자신 그리하지 못했던 데 대한 반성과 늦었지만 앞으로 그리하겠다는 다짐에 다름 아닙니다. 쉽지 않은 시기에 산적한 난제들을 뒤로 하고 떠나게 되어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난제는 해결될 때 까지만 난제입니다. 김 덕중 청장님과 간부들, 그리고 후배님들의 역량과 열정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박 윤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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