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조피렌 사태, 남은 건 국민 불안과 한류제품 신뢰하락 뿐...

한건주의식 폭로와 소신 없는 식약청 이번 사태를 만들어 냈다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라면수프에서 검출됐다는 MBC의 보도가 나간 이후 1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라면업계의 대표적인 기업 역시 섣부른 관계당국의 책임성 없는 행정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막대한 피해를 떠안아야만 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00라면은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SNS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갔고, 심지어는 "OO 라면 한 봉지라도 지난 10년 이내에 섭취한 경험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주기적으로 위암, 췌장암, 유방암에 대해 정기검진을 받으셔야 합니다"라는 악의적인 내용까지 확산됐다.

과연 이번 ‘벤조피렌 라면 수프의 가스오부시 사건’이 왜 일어났고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또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지난 24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감 현장에서 농심의 일부 라면수프에 벤조피렌 기준을 초과한 원료를 사용한 것과 관련, 이희성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은 "해당 제품을 검사한 결과 평생 먹어도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고 말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처음 언론에 공개한 민주통합당 이언주 의원은 "농심이 부적합 원료를 사용한 것은 맞지 않느냐. 왜 제품 수거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고 몰아붙이자 이 청장은 "공감한다. 시정조치를 했어야 했다"고 답하면서 이번 ‘벤조피렌 라면 수프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중론이다.

이날 이희성 식약청장은 국감장에서 계속 안전하다는 얘기를 반복하다 국회의원으로부터 "기준치가 초과된 부적합 원료를 사용해서 제품을 생산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사항인데 그것이 얼마나 해롭냐, 그렇게 해롭지는 않을 수도 있다 없다는 얘기로 논지를 흐리면서 언론플레이 하는 것이 식약청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라고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식약청은 발암물질이 들어갔지만 안전에 이상이 없다던 23일 공식자료와 이튿날 국정감사장에서 해당 라면을 회수하겠다고 밝힌 이희성 청장 발언 중 하나를 택하고 하나를 부인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던 것이다.

이에 따라 식약청은 당초 태도를 180도 바꿔 다음 날인 25일 농심 일부 라면 제품을 자진 회수하라는 조치를 내렸던 것이다.

이 같은 조치가 내려진 지난 주말부터 최근까지 농심의 '너구리' 제품의 경우 거의 절반의 가까운 매출 감소를 보였고 기타 우동류 매출 역시 20% 이내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식약청 결정 이후 해외시장에서도 해당 기업의 이미지 실추에서 끝나지 않고 국내산 라면 전체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농심은 미국, 중국, 베트남, 러시아, 대만 등 100여 국가에 라면을 수출하고 있고, 지난해 농심의 매출액은 2조여원으로 이 가운데 25% 가량인 5000억여원을 해외에서 올렸지만 이번 벤조피렌 파동이 해외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농심의 라면 매출에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대만 정부가 지난 25일 농심의 제품에 대한 회수 명령을 내린데 이어 26일 홍콩과 일본, 27일 중국까지 리콜ㆍ회수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말레이시아의 대형 할인마트 쟈스코와 미국 일부 할인매장이 자발적으로 농심의 관련 제품을 철수한데 이어 싱가포르와 뉴질랜드에서도 유통업체들이 농심 제품 회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맞서 농심은 해당제품이 수출되는 국가에서 유통 중인 제품 샘플을 해당 국가 공인시험기관에 분석을 의뢰해 분석결과를 토대로 후속조치를 실시하는 등 사태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농심의 힘겨운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로 이번 대만 정부 공인 검사기관인 '화요 기술연구소'에 의뢰한 결과에서는 대만에서 유통 중인 농심 제품 3종(얼큰한 너구리, 순한 너구리, 신라면)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되지 않았다.

또한 화요 기술연구소는 벤조피렌 검출 한계는 5ppb이며, 3종에 대한 분석결과 불검출이라고 판명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식품에 문제가 있거나 인체에 유해하다면 국제적 리콜까지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검출량이 인체에 무해한 수준인 데다, 처음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뚜렷한 근거를 마련하지 않고 무작정 태도를 바꾼 것은 식약청이 크게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일각에서도 "식약청에서 초기 대응을 미흡하게 하는 등 뒤늦게 말을 바꾸며 회수조치에 들어가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밝히면서 "벤조피렌이 발암물질인 것은 사실이지만 농심 제품에서 나온 벤조피렌 함량은 삼겹살 등을 구워먹을 때 섭취하거나 검게 볶은 깨로 짠 참기름에서 나오는 양과 비교했을 때 극미량에 불과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바라보고 있는 국정감사에서 한건주의식 폭로와 소신 없이 눈치만 보는 식약청의 어정쩡한 태도가 이번 사태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벤조피렌 파동과 관련 이화여대 오상석 교수(식품공학과)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작은 양이라도 유해 물질이 들어 있다고 하면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론적으로 100% 안전한 식품은 없다"며 "그래서 과학적인 기준을 정해 그 기준 이하이면 평생 섭취해도 좋다고 하는 것인데, 식약청은 스스로 일관성을 버린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이형주 교수(식품생명공학)는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나 된장국에도 미량이나마 유해 물질이 들어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기준치 이하일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섭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와 관련 농심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놓고 뒤늦게 회수 명령을 내리는 등 우왕좌왕하면서 사태가 커졌다"며 "식약청 조치 이후 지난 주말 너구리의 하루 매출이 40% 급감하는 등 기업 이미지는 물론 제품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총력을 다해 노력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상황"이라며 "최대한 빨리 안전하다는 실험 결과를 각 나라 식품당국에 제출해 판매 재개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농심 라면 파동 분석과 對중 수출 해결책 >

지난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톈진에서 열린 ‘제8회 세계 라면 포럼’에 따르면, 2011년 전 세계 라면 소비량은 982억 개를 기록했고, 그 중 중국이 424억7000만 개로 세계 소비량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 조성에만 급급해 만들어낸 이번 농심 라면 파동은 국민들의 불신만 커졌고, 해외시장에서 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애써 쌓아 올린 중국에서의 이미지 실추만 초래 됐다는 분석이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농심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유해성 논란이 가시지 않자 식약청은 25일 발암물질이 검출된 라면에 대해 즉각 회수조치를 내렸지만 해당 제품 제조시기는 4~6월에 해당해 이미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 전량 소진된 상태라 그 조치의 실효성이 없었다는 판단이다.

또한 농심의 이번 파동은 비단 한국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수출이 진행되는 해외 100여개 시장에서의 대처방안 강구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세계 라면 소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중국시장에서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다시 한번 힘써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중국시장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품질, 고가격’으로 경쟁력을 가지던 한국 라면의 품질에 대한 불신이 늘어남에 따라 對중 수출의 방향도 변화가 필요 하다는 것이다.

중국시장에는 이미 기존 중국 브랜드의 다양한 라면제품이 출시돼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제품 다양화보다는 기존 제품의 품질 개선에 주력해 우수한 고품질로 어필해야 하고, 이를 통해 중·고가 라면의 입지를 다잡고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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