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 억눌린 분노가 부른 ‘마음의병’

민성길 은평병원장 (연세대 명예교수)

  
◈중년이후 여성 다발… 급성은 젊은층도
◈방치하면 두통·고혈압에 심장마비까지
◈약물·행동요법부터 부부·가족치료 중요
◈긍정적 사고·적절한 운동 극복에 도움

화병은 일반 연구의 4.1%에서 발견되고, 여성에 많고, 중년이후 연령대에 많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수준이 낮은 계층에 많다. 이러한 사실은 화병이 아직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다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계층에 많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급성 화병은 젊은 층에 많다. 경제수준이 높은 계층에서도 화병이 있으나, 서구적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화병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서론
‘모두가 화를 내는 세상’
최근 우리 사회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분노가 문제 되고 있다. 주로 빈부차이, 양극화 현상 또는 세칭 99%의 분노와 관련돼, 미국 월가 시위를 필두로 유럽에 이르기까지 분노의 물결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전부터 분노의 물결이 거리를 메우는 일이 많았다.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촛불시위, 철거시위, 그리고 요즘은 일인시위 등 개인적으로도 폭력적 게임, 학교폭력, 악플, 자살 등 분노와 공격성이 증가하고 있다.

분노와 공격성(폭력)은 거의 항상 동반된다. 그래서 분노와 폭력은 자타에 상처를 주게 되며, 이어지는 보복에 의해 전파, 확대된다. 공격적 보복은 쾌감을 야기하기 때문에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르기 마련이다.

분노는 여러 질병의 원인이다. 자신에게서 분노가 폭발될까봐 우려하는 마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피해 받아 자존심 상하면 억울하고 우울증이 나타난다. 폭력적 상대에 대해서는 공포를 느낀다. 흥분은 조증 증상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분노가 있을 때 반항도 하지만 주로 음식거절이나 주의산만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분노를 참으면 화병이 생긴다. 분노와 화병은 두통, 소화장애, 관절통, 어지럼증 등을 일으키고, 만성 분노는 고지혈증,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등을 촉발한다. 또 뇌출혈이나 심장마비를 일으켜 실제로 죽음에 까지 이를 수도 있다. 화병으로 죽는다는 말이 사실인 것이다.

신기하게도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화병’이라는 병명이 민간에서 사용돼 왔다. 한국사회에는 화병환자가 많다. 많으니까 그런 병명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에 억울하고 분한 것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것은 화병 이외에도 쌓이고 쌓인 ‘한(恨)’이라는 단어로도 표현됐다.

■ 발생과정
화병은 그야말로 화나는 것, 억울한 것을 오래 참다 보면 쌓여 생기는 병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속상한 것, 성질나는 것, 속 끓이는 것, 고민하는 것, 갈등, 좌절, 욕구불만, 한스러운 것 등을 참아서 쌓이고 쌓여 생기는 병이라는 것이다. 현대적 용어로 말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또는 ‘마음의 상처가 오래된’ 결과다. 화병은 그야말로 ‘분노의 병’인 것이다.

■ 화병 유발 성격 따로 있나
한국 사람들은 ‘버럭’ 화를 잘 낸다. 욱하는 성질이 많다. 흔히 화병환자들은 자신의 성격이 나쁘다, 예민하다, 급하다고 표현한다. 예민하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잘 느낀다. 그러나 또한 마음이 여리고 착하고 소극적이어서 참는 경향이 있다. 흔히 가정의 평화를 위해 또는 자식을 위해 문제에 직면하기보다 피하고 스스로 희생하는 마음을 가진다.

■ 증상
화병은 분노(화)의 느낌, 분노표현, 미움, 억울함, 씁쓸함, 공격성, 그리고 분노와 관련된 신체적 증상들이 특징이다. 신체적 증상이란 불과 열기를 상징하는 것 같다. ‘열이 화끈 오르고’ ‘속에서 끓어오르고’ ‘치밀어 오르고’ ‘머리로 뻗치며’ ‘가슴이 벌렁대며’ ‘입이 탄다’고 한다.

계속 참아야만 하니까 쌓인 것이 뭉쳐 목이나 가슴에 덩어리가 있는 것 같고 그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지고, 답답하니까 한숨이 잦은 증상이 생기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분노를 심장의 불로 묘사하기도 한다. 분노는 심장혈관장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 보통 쓰는 말에도 ‘열 받는다’ ‘열불이 난다’ ‘열 오른다’ ‘속 탄다’ ‘불같은 성격’등의 표현이 흔하지 않는가? 화병의 특징이 한 옛날 민요에 잘 나타나 있다.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풀풀 나구요 / 이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없구나’

가슴이 타는데 연기나 김이 막혀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화병의 정신증상으로 허무하고 눈물이 나며 잡념이 많고 죄의식을 느낀다. 행동증상으로도 어쩔 줄 모르겠고 정신이 나간 것 같으며 차분히 앉아있지 못하고 사방이 답답하고 더워 문을 다 열어 놓거나 밖으로 휭하니 뛰쳐나가고 싶고 헤매고 다니고 싶고 또 누구든지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한없이 하소연하고 싶어 한다.

■ 치료
화병의 치료는 일반 신경증적 장애(불안장애, 우울증 등)에 대한 치료와 같다. 정신치료는 분노와 관련된 상황을 분석하고 대인관계의 문제점을 밝히고 조정하고 적응하는 기술을 알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부치료, 가족치료 등도 포함된다. 특히 정신분석은 분노행동의 무의식적 요인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인지치료는 분노에 대한 대응에 있어 인지이론 내지 정보처리 이론을 응용하는 것이다. 행동치료는 이완요법 등으로 분노 관련된 신체 반응을
조절함으로 분노통제를 체득하는 것이다. 그 외 기도, 내적 치유, 참선. 긍정적 사고방식, 절제된 생활 등 종교적 방법도 있다.

약물치료는 정신과 약물 중에서 분노에 효과적인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대개 뇌에서의 세로토닌 기능을 강화하는 항우울제(특히 SSRI)가 사용된다. 기타 항불안제, 항경련제, 리튬, 항아드레날린성 약물 등이 사용된다. 반드시 전문의의 처방이 요구된다.

화병을 포함한 모든 정신장애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신체적 건강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평소 적절한 휴식, 골고른 영양 섭취, 운동, 체중 등을 조절해야 한다. 감정(자율신경계)을 자극하기 쉬운 음식, 예를 들어 카페인(커피, 콜라 등 청량음료), 술, 담배 등은 삼가는 것이 좋다.

■ 예방방법
민성길 원장이 말하는 스스로 분노를 다스리는 법(Anger Management)
△화의 진정한 원인을 찾는다.
△될 수 있으면 화가 날수 있는 상황을 피하고 말을 삼간다.
△화의 요인을 긍정적으로 반감 없이 받아들인다.
△나쁜 사건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전략을 수립한다.
△유머(humor)의 힘을 사용한다.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분노를 표현(비폭력적)한다.
△역설적인 마음 자세(Paradoxical mind-set)를 가진다. 예를 들어 화날 때 웃는다.

□ 민성길 원장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대한 의학한림원 종신회원
▲Psychology Institute, Tuebingen University, Germany
▲Department of Psychiatry, Illinois State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and Illinois State Psychiatric Institute, U.S.A.
▲대한민국 녹조근정훈장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The Marquis’s Who’s Who in the World, 제 14판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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